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송순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5호
발행연도
2016.11
수록면
379 - 425 (47page)
DOI
10.21490/jskh.2016.11.65.379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글은 1930년 『조선국세조사보고』의 직업 통계를 바탕으로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여성 직업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일제하 조선사회는 농촌지역과 도시지역에서 각각 여성들의 삶은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과연 ‘신여성’의 표상이 일제 식민지기 조선 여성의 삶을 대표할 수 있는가, 조선 사회를 하나의 공간으로 설정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이에 道단위 지역별로 농촌지역(郡)과 도시지역(府) 여성의 직업양상을 살펴보았다. 조선 농촌여성의 직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농업수조’라는 직업 구분이다. 농업수조는 “처, 자녀, 부모 기타 가족으로서 세대주 또는 다른 가족의 직업을 계속적으로 돕는 자”로서 ‘계속적’인가 ‘일시적’인가에 따라 ‘농업 수조’와 ‘무업자’로 구분되었다. 조선인 여성의 ‘농업수조’ 비율은 지역별로 큰 차이가 있었다. 서북지역(황해도, 평안남북도)과 전라남도는 농업수조 비율이 35%를 넘었고, 중남부지역(경기, 충청남북도, 경상남북도, 전라북도, 강원도)과 관북지역(함경남북도)은 평균 10% 정도에 그쳤다. 사상적으로 개방적이고 근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빠르게 전개된 서북지역과 전남의 여성 농업노동의 다수가 ‘농업수조’라는 사회적 노동으로 인정되었던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일제시기 여성 담론 중 대표적 이미지가 ‘신여성’이다. 그러나 일제시기 도시(府)지역 여성들은 조선인, 일본인을 막론하고 직업 중 가장 많았던 것은 접객업종사자와 가사사용인이었다. 반면 일본인의 경우는 의료종사자, 통신종사자, 관공리 등 전형적인 ‘신여성’의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대구부와 부산부의 경우 조선인 여성 중 방직공업 종사자 비율이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 평양부, 진남포부, 신의주부의 경우 조선인 여성들은 화학제품 제조업 등의 공업 분야에 종사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식민지 조선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농업중심의 산업구조 하에서 여성들은 농촌을 벗어난 경우 도시지역의 산업기반의 취약성으로 인해 접객업이나 가사사용인 같은 서비스업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신여성’으로 상징되는 근대적 커리어우먼(직업여성)은 그나마 재조 일본인 여성의 몫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1920~30년대 여성 농업인구의 특성 및 지역성
3. 1920~30년대 도시(府)지역 여성의 직업 양상 및 지역성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56)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7-911-001885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