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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대기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01집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289 - 317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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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代의 의료 기구는 크게 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전문적으로 병자를 치료하는 병원기구이고 다른 하나는 약재를 가공하거나 약품을 제공하는 약국기구이다. 1102년부터 설치되기 시작한 ‘안제방’은 이들 병원기구와 약국기구들의 지원 속에서 송대 의료구제 기구로서 기능을 하였다. 그러나 안제방은 설치되기 시작한 지 10년도 채 안되어 그 폐단이 포착되기 시작하였다. 정강의 변 이후 남송초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안제방은 거양원과 더불어 구제기구로서의 기능을 유지하였다. 그러다가 1140년대에 이르게 되면 서서히 자취를 감추는 추세였으며, 이 시기와 비슷하게 맞물려 양제방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융흥화의 시기 전란과 12세기 한랭화 현상으로 인한 재해의 증가가 맞물리면서 유이민의 숫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특히, 1160년대 들어서면 재해의 정도와 횟수가 그 전보다 매우 심해졌다. 『宋會要輯稿』를 분석해보면 이 시기 재해와 진제 관련 기사 수는 3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 1140년대부터 거양원과 안제방과 같은 빈민 수양기구가 침체국면이었기에 당시의 재해국면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수양기구는 매우 부족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송 시기에는 지방 단위에서 자체적으로 재원을 확보하는 형태로 구제기구의 재정상황이 변화하고 있었다. 구제기구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고 그것을 관리 감독하는 데 지방관 개인의 관심과 역량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구제기구의 재정을 자체적으로 책임져야하는 향촌 사회로서는 거양원, 안제방과 같은 각기 기능적으로 특화된 빈민 구제기구를 여러 개 만들기에는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또 재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로 인한 유이민이 폭증하는 상황에서 순발력 있게 대응할 필요성도 제기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1160년대 이후부터 기존의 빈민 수양 기구였던 거양원과 빈궁한 병자들의 치료 기구였던 안제방의 기능을 수렴한 양제원이 확대된 것으로 이해된다.
‘구제기구의 개념•기능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남송 초 1140년대까지 빈민 수양기구(收養機構)였던 거양원과 병자 수양치료기구였던 안제방이 병존하다가 1160년대 들어서면서 양자(兩者)의 기능이 양제원으로 수렴•통합되어 갔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겠다. 주로 겨울철에 빈궁한 환과고독자를 시설에 수용하여 진제하는 방식을 “居養(院)”이라고 하였고, 빈궁한 병자들을 시설에 입원시켜서 의사를 동원하여 치료하는 것을 “安濟(坊)”라고 하였다. 양제원은 바로 거양원과 안제방의 개념과 기능이 합쳐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안제방의 설치와 운영
Ⅲ. 의료구제 활동
Ⅳ. 양제원의 확대와 구제 기능의 변화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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