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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엄승희 (이화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33號
발행연도
2017.2
수록면
123 - 153 (31page)
DOI
10.14769/jkaahe.2017.02.3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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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근대전환기에 수입된 서양자기 가운데 식기사용의 실태를 사료기록 및 유물을 바탕으로 추론하여, 전반적인 흐름과 동 시기 조선요업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근대전환기에는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서구열강과의 통상조약을 계기로 서양문물이 본격적으로 수용되었다. 특히 국가 간의 수교 체결 이후 문호개방은 더욱 확대되면서 새로운 대외교류가 이루어졌다. 서양자기들 역시 이 무렵 대부분 수교국들을 중심으로 조선에 들여와서 사용되었다.
서양자기 가운데서도 양식기들은 자주적인 근대국가를 천명하고 세계화에 합류하려던 대한제국기에 가장 활용도가 높았다. 조선 왕실은 외교인사들을 수시 궁에 초청하여 서양식 연회를 베풀었고, 때문에 연회의 성격은 다분히 국가의례적이었다. 그 외 양식기는 왕실의 일상생활용품으로 쓰이면서 상당량이 공급되었다. 따라서 근대전환기의 양식기는 외교인사와 고위관료들을 접대하기 위한 국가 필수품이었지만 왕실의 상차림과 식문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쳐 사용범위가 비교적 다각적이었다. 특히 조선 왕실과 특권층을 중심으로 양식기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근대 서구의 음식문화 토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도자에 대한 인식이 일부 전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밖의 사료 기록에 따르면, 왕실 이외 각국 공사관(公使館), 대중시설 등의 서양식 연회 및 접대성격 등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서양자기의 사용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던 근대전환기는 이로 인해 형성된 도자문화가 조선말기 요업에 어느 정도 파급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시기의 국가정세와 재정은 날로 위태로웠고 분원의 민영 이후 조선요업은 최대 위기를 맞이하면서 서구 제도술(製陶術) 도입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따라서 서양자기가 세계 각국에서 수입되어 일부 특권층에 신선한 자극이 되었지만 그 기술력과 문화가 조선요업과 사회에 직접적으로 미친 영향은 거의 없었다.
근대전환기의 서양자기는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국가의례용으로서 사용되어 외교정책 수립을 위해 반드시 구비해야만 했다. 따라서 양식기의 사용은 이 시기 외교와 서구문명이 수용되는 가운데 유입된 특별한 문화적 소산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근대전환기 외교관계와 새로운 접대문화 수용
Ⅲ. 사료에 나타난 근대전환기의 서양자기 수입과 사용실태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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