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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은선 (안양대학교)
저널정보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사상과 문화연구원 장신논단 장신논단 Vol.48 No.4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169 - 197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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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환이 그의 마음속의 이미지에 따라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을 순교라고 인식한 것이라는 고무송의 해석이나 그의 인식이 가톨릭의 시복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최상도의 해석은 한국 선교사들의 선행하는 일반적인 인식을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다. 1890년대 아펜젤러와 게일은 『코리안 리포지터리』를 통해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한국 선교사들에게 알렸다. 게일은 이 사건이 조선군의 선제공격으로 발생했고 백기를 든 사람들을 처형했다는 변호적인 관점에서 기술했다. 그리고 그래함 리와 언더우드는 토마스가 조선에 성경을 반포하러 온 첫번째 장로교 선교사라는 사실을 알렸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1909년 장로교 선교 25주년 기념식에서 마펫은 그가 조선에 온 첫번째 장로교 선교사로서 성경을 반포하다가 죽었다는 공식적인 평가를 내렸다. 장로교 선교부는 그 해 기념위원회를 조직하여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후원을 받아 그의 성경 반포와 죽음을 기념하는 기념교회를 세우고자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1915년에 감리교의 존스 선교사는 미국에서 그의 죽음을 순교라고 서술했다.
오문환은 1926년 『평양양란』을 저술하여 그가 조선에 온 첫번째 장로교 선교사로 순교당했다는 것을 사건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 설명했다.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에 대한 그의 설명은 1926년 장로교 총회와 장로교 선교사들의 연례회의에서 수용되었고, 승동교회에서 순교 6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1927년 5월 그의 순교기념위원회가 조직되었으며, 오문환은 『도마스 목사전』을 저술했고, 1932년 그의 순교기념교회가 봉헌되어 1910년대 선교사들의 기념교회 건립 계획이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오문환의 토마스 목사 순교에 대한 해석은 그가 1920년대에 갑자기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한국 선교사들의 인식을 이어받아 대중화 시킨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목차

〈국문 초록〉
Ⅰ. 서론
Ⅱ. 토마스 선교사에 대한 로스와 그리피스의 인식
Ⅲ. 국내 입국 선교사들의 토마스 선교사에 대한 인식
Ⅳ. 오문환의 도마스 목사 관련 저술과 기념위원회 조직과 기념교회 설립(1926-1932)
Ⅴ.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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