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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서명일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8호
발행연도
2017.8
수록면
93 - 128 (36page)
DOI
10.21490/jskh.2017.08.6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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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견문』 19∼20편은 유길준이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도중 유럽을 여행하며 견문한 내용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견문 기록은 대부분 1885년 일본에서 간행된 『만국명소도회』라는 여행안내서를 번역한 내용이었다. 그 동안 19∼20편을 경험적 서술로 간주해왔던 것은 유길준이 여행안내서를 번역했기 때문에 빚어진 오해였을 뿐이다. 유길준이 2년여의 서양 체류에도 불구하고 ‘견문’ 없는 견문록을 남긴 까닭은 그의 경험세계가 유학지였던 미국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개월에 걸쳐 유럽을 여행했으리란 추정과는 달리 그에겐 유럽을 여행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실제 19∼20편의 내용을 보면, 미국의 도시에서만 경험적 서술이 나타날 뿐 유럽에 대한 서술은 『만국명소도회』의 全譯에 가까웠다. 번역으로 일관되어 있는 그의 유럽 소개는 유길준의 서양 체험이 유럽에 미치지 못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에게 ‘번역’은 경험을 보완하는 수단이 아니라 부족한 경험을 대체하기 위한 의식적인 선택이었던 셈이다. 유길준은 여행안내서였던 『만국명소도회』를 번역함으로써 자신도 가보지 못한 ‘문명’ 중심부의 위용을 소개할 수 있었다. 다만, 그는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영문저술을 참고하지 못한 채 『만국명소도회』만을 번역하고 있었다. 유럽을 직접 견문하지 못한 상황에서 참고문헌마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번역은 『만국명소도회』의 내용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길준이 번역한 서양은 『만국명소도회』가 그려놓은 모습과 일치하지 않는다. 번역에 따른 재해석은 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만국명소도회』를 번역하며 기독교에 관한 내용을 모두 삭제했고 공화정에 대한 서술도 대부분 생략했다. 나아가 미국의 독립전쟁에 대해서는 원본과 무관한 감상을 덧붙이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표출했다. 유길준은 삭제와 생략을 통해 번역에 개입했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번역문 속에 감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미국의 독립에 대해서만큼은 淸의 간섭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신의 현실인식을 직접적으로 투영하고 있었다. 결국 유길준은 견문의 제약을 넘어서기 위해 번역에 의존하면서도, 미국독립사는 부각시키고 기독교는 배제하며 공화정은 축소시킴으로써 자신이 해석한 서양을 제시했다. 그가 보여준 서양의 역사적 성취 속에는 기독교와 공화정, 나아가 혁명이라는 체제위협적인 요인들이 모두 제거되어 있었다. 서양을 경험하지 못한 조선의 독자들은 유길준이 제시한 근대 도시의 번영을 보며 서양을 상상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보았던 것은 유길준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재해석된 서양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서유견문』 19∼20편의 전거
3. 『만국명소도회』의 번역과 유길준의 경험세계
4. ‘견문’ 없는 견문록의 한계
5. 번역에 나타난 유길준의 목소리
6.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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