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을경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84輯
발행연도
2017.10
수록면
249 - 285 (3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천도교단은 청년 육성을 통한 근대화를 위해 지방에 ‘교리강습소’와 ‘야학강습소’를 설립하였다. 충남의 교리강습소는 홍산, 서산, 예산에 4개의 강습소가 설치되었다. 1919년 9월 청년들에게 문화운동론을 교육하는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가 설립되었고, 충청도는 청주에 설립되었다. 청주는 손병희의 출생지로 교단의 정책적인 지원이 있었던 곳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충청도의 근대문명이 전파되었다. 이후 청년들은 1920년 4월 25일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를 천도교청년회로 개편하였다. 충남 서산의 이종린이 청년회의 간의원을 맡았고, 이러한 영향으로 충남 서산 청년회가 전국에서 두 번째로 설립되었다. 전국적으로 청년회는 118개가 설립되었으나, 충남은 10개의 교구에서 3개의 청년회 지회가 설립되는 저조한 양상을 보였다. 이는 충남이 비타협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구파 세력이 주도하게 된 영향이었다.
청년회는 지역마다 강연회를 전개하였다. 충남에서도 홍성, 공주, 예산, 태안, 서산, 당진 등에서 강연회가 전개되었고, 강연 내용은 천도교, 청년계몽을 통한 문화운동이었다. 청년회는 도서와 출판에 주목하면서, 충청지역에는 청주군 읍내와 이종만이 운영하는 서산군 서산읍 읍내리에 개벽분매소가 위치했다.
1920년대 신구분열로 교단이 혼란하던 시기 천도교 청년들은 청년회를 해체하고 1923년 9월 2일 천도교청년당을 창립하였다. 청년당창립에 충남 출신 박래홍과 이종린이 주도 인물로 참여하였다. 충남에도 1개의 청년당이 설립되었고, 논산광제조합 설립, 야학과 야학단 설립 등 계몽과 교육에 관련된 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
1925년 천도교단은 4개의 파로 분규하였고, 충남지역은 구파 뿐 아니라 신파와 연합회에 소속된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파들이 활동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까지는 구파들이 주도하는 지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신구의 분열로 청년회는 신파의 청년회와 구파의 청년동맹으로 분열하였고, 충남 청년동맹은 전국에서 제일 빠르게 설립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청년 육성과 문화운동
3. 교단의 분열과 문화운동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7)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8-911-001486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