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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희정 (홍익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96號
발행연도
2017.12
수록면
243 - 271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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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20세기 동서 문화의 충돌, 전쟁, 사회주의화 등 급변하는 시대 상황의 변화에 대응하여 중국 화가 傅抱石(1904-1965)의 예술사상이 그의 산수화 작품에 어떻게 구현이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중국 대표적인 근대 수묵화가 傅抱石의 예술과 사상은 격변기 중국의 정치·사회·문화의 시대 상황을 반영한다. 傅抱石은 근대 중국회화사에서 예술적 기량이 뛰어난 화가일 뿐만 아니라 다수의 저서와 논고를 집필한 미술 사가이기도 하였다. 그는 전통을 기반으로 한 혁신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중국화의 근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傅抱石 산수화의 전개과정은 중국 수묵산수화의 담론과 그 변천을 대변해준다. 傅抱石은 일본 유학시기를 통해 재발견한 중국화의 전통과 혁신을 그의 예술사상으로 승화시켰다. 또한 중일전쟁 시기에 그가 창안해낸 독특한 준법인 抱石皴으로 개성적인 산수화풍을 정립하였다.
본 논문은 傅抱石 산수화의 변천을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1925년부터 1935년까지는 ‘예술과 사상 태동의 시기’로, 1936년부터 1948년까지는 ‘회화관과 화풍 정립의 시기’로, 1949년부터 1965까지는 ‘정치이념의 수용과 소재 다양화의 시기’로 특징지어 고찰하였다. 傅抱石은 남창에서 1921년 ‘抱石’이라는 雅號로 화가로서의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일본 유학을 계기로 예술적 시야를 넓히고 중국화의 전통을 재발견하게 된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 중일전쟁시기에는 중국화의 개혁에 관한 담론에 참여하면서 중국문인화의 형식화와 流派化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는 또한 중국화 전통기법의 한계에 대한 자각을 통하여 일본 및 서양화풍의 선택적인 수용을 주장하였다. 傅抱石은 전통적인 필묵 형식의 혁신을 주장하며 그만의 독특한 준법인 ‘抱石皴’을 창안하였다. 이러한 그의 개성적인 예술과 사상은 중일전쟁시기에 사천지방의 풍경을 담은 작품들에 잘 반영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부터 1965년 사망까지 傅抱石은 작품에 정치와 이념을 반영하면서 새로운 주제의 탐색과 다양한 산천을 묘사하였다. 1957년 동유럽 탐방과 1960년대 국토 사생여정을 통해 傅抱石은 예술적 시야와 기량을 더욱 넓힐 기회를 얻게 된다. 당시 중국 미술계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강조되어 전통화법을 포기해야하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傅抱石은 중국화 전통의 계승과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요구를 동시에 부응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시도와 노력을 통해 傅抱石은 江蘇省 화가들을 중심으로 新金陵畵派를 이끌면서 20세기 중국 수묵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화가로서 평가할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傅抱石의 예술 사상과 산수화의 변천
Ⅲ.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참고문헌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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