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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현주 (아주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42호
발행연도
2018.4
수록면
363 - 399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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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는 선덕왕부터 경순왕에 이르는 시기를 말한다. 신라 하대초기 (선덕왕~헌안왕), 그 중에서도 선덕왕~흥덕왕에 이르는 시기는 원성왕계의 독점적인 왕위계승이 이루어진 동시에 원성왕계 사이의 왕위쟁탈전도 격심 했던 시기이다. 이 시기의 왕위계승을 둘러싼 갈등은 왕실여성, 그 중에서도 왕의 母와 妻의 칭호와 지위에도 영향을 미쳤다.
원성왕은 즉위 직후에 그의 직계 4조와 그의 모인 박씨를 추봉하고, 왕태자를 추봉하였다. 또한 五廟制를 개정하였다. 원성왕은 부계적 정통성을 세움으로써 왕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원성왕과 김원량-김신술 세력은 母와 妻를 매개로 한 친인척 관계로, 원성왕의 즉위를 지지한 세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성왕의 어머니와 부인에 대한 기록이 파편화되거나 멸실되었는데, 그 이유는 원성왕이 부계적 정통성을 강조함으로써 왕권의 정당성을 구축하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하대왕후의 위상과도 연관되었다. 하대 초기의 왕후 책봉은 태자 책봉 이전에 이루어졌는데, 이는 正妃가 낳은 태자에게 왕위계승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라 하대의 왕후책봉과 위상은 차기왕위계승권자인 태자와 연동된 사안이었다.
또한 신라 하대초기에는 당이 신라의 왕실여성을 책봉하는 일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당의 책봉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행위였다. 당의 입장에서는 주변국 군주에게 爵號를 내림으로써 중국과 주변국과의 왕과 신하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신라의 입장에서는 당의 책봉을 통해 왕권의 정통성 내지는 왕권을 유지하고자 의도하였다. 당의 책봉을 통해 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어 했던 것이다. 당이 신라의 왕뿐만 아니라 왕모 및 왕비에게 빈번하게 책봉하였던 것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당으로부터 신라왕의 어머니까지 책봉을 받았던 것은 소성왕, 애장왕, 헌덕왕, 흥덕왕에 한정된다. 원성왕과 애장왕은 五廟制를 직계 4祖로 개편하여 그를 통해 부계의 수직적 계통성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원성왕의 손자인 소성왕과 헌덕왕, 흥덕왕은 어머니가 동일하고, 소성왕의 아들인 애장왕만 어머니가 다르다. 헌덕왕과 흥덕왕은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왕으로 즉위한 이들이다. 즉 소성왕, 애장왕, 헌덕왕, 흥덕왕은 모두 원성왕계로 父系적 지지기반이 동일하다. 따라서 헌덕왕과 흥덕왕은 왕권의 정당성을 위하여 부계적 정통성은 물론 당의 책봉을 받은 왕모의 위상 역시 필요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하대 초기의 원성왕계는 왕위의 정당성이 부족하였다. 이를 위하여 내부적으로는 父母를 追封하여 왕실 직계의 위상을 높여서 부계적 정통성을 내세웠고, 외부적으로는 당의 王母책봉을 받음으로써 왕권을 정당화 하고자 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왕실여성의 책봉과 위상 변화
Ⅲ. 당의 신라왕대비 책봉과 의미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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