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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두헌 (군산중앙고등학교)
저널정보
교육사학회 교육사학연구 교육사학연구 제28권 제1호
발행연도
2018.5
수록면
29 - 53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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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이 武鄕으로서 본격적으로 발돋움한 것은 병자호란 때부터였다. 병자호란 때 서울 출신들과 함께 수원 출신들이 다른 지역 출신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남한산성에서 국왕 인조를 호위하였기 때문이었다. 1637년(인조 15) 별시 무과에서 서울 출신들과 함께 수원 출신들이 다른 지역 출신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급제하였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이후부터 19세기까지 수원 지역에서는 무과 급제자가 줄곧 많이 배출되었다. 특히 정조 연간 후반에 정조가 수원을 군사 도시로 중시한 본격적인 정책들을 실시하면서부터 수원의 武鄕으로서의 기능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수원이 武鄕이었다고 해서 文의 기능이 빈약한 것이 아니었다. 수원 지역 출신 문과 급제자와 사마시 합격자 수는 17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비교적 적은 편이었지만, 18세기 후반부터 급증하였고, 그 증가 양상은 19세기 후반까지 문과는 유지되었고 사마시는 가속화되었다. 특히 정조 연간 후반부터 문과 급제자가 월등히 많이 배출되었고, 사마시 합격자 배출 비율도 약간의 강세를 보였다. 이때부터 文武가 함께 진흥하는 시대를 맞이하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수원 지역문인과 무인에 대한 試取, 문 · 무과 수원 별시의 설행, 그리고 수원 지역으로의 주민 이주 정책 등의 정조의 정책들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정조 사후 19세기에도 수원은 문과 급제자와 사마시 합격자, 그리고 무과 급제자를 다수 배출하는 문무가 균형 잡힌 도시로서 명맥을 이어나갔다.

목차

요약
1. 머리말
2. 조선시대 수원 지역 과거 합격자 파악 및 확정
3. 조선시대 수원 지역 과거 합격자 과목별 배출 양상과 시기별 추이
4. 맺는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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