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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남기 (안동대학교)
저널정보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한국학논집 한국학논집 제71집
발행연도
2018.6
수록면
7 - 30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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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德標(1664~1745)는 경주 출신의 문인으로 李彦迪으로부터 이어져온 忠孝의 家學을 계승하여 의리의 실천에 진력하였다. 1666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학업에 정진하였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 출사를 단념하고 조상 및 지방 유현의 현창 사업에 힘을 쓰는 한편 경전 등을 탐독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경종이 즉위한 뒤 辛壬獄事가 일어나자 이덕표는 1722년에 영남 유생의 疏頭가 되어 서울에 가서 1701년에 억울하게 죽은 禧嬪張氏의 신원, 경종을 모해하고 延礽君의 왕세제 책봉을 주장하는 역신의 처벌, 三道 유생들의 상소를 지연시키는 승정원 관리의 처벌을 주청하는 여러 편의 소를 올렸다. 이들 상소는 대의명분과 충효에 입각한 글로 시사를 엄정하게 인식하고 표현이 매우 준절하였지만 경종의 비답을 받지 못하였다. 고향에 돌아온 뒤 학문에 전념하던 중 1725년 4월에 1722년의 상소로 말미암아 노론의 탄핵을 받아 평안도 龍川으로 유배를 갔다가 1727년 7월 해배의 명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고향에 머물며 학문에 전념하는 한편 주변을 유람하며 시문을 짓기도 하고 조상과 유현의 현창 사업에 전념하다가 생을 마쳤다.
본 논문은 다음의 순서로 논의를 진행하였다. 2장에서는 『寓窩集』에 실린 시문을 통하여 그의 가계와 생애를 살피고,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정신이 충효와 의리의 실천임을 밝혔다. 3장에서는 『우와집』의 체제와 주요 내용을 약술하여 문학 세계의 주요 경향과 특징 등을 언급하였다. 4장에서는 이덕표의 문학 중에서 가장 정채를 띠는 시기, 곧 1722년부터 1727년까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이덕표는 1722년에 영남 사림의 소두가 되어 辛巳獄事에 대한 辨誣와 역신의 처벌을 주청하는 소를 올렸고, 이 일로 말미암아 1725년 평안도 용천에 유배를 갔었다. 시문 중 상당수가 이 시기에 생산되었고, 이때 지은 작품들이 그의 문학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목차

Ⅰ. 서론
Ⅱ. 李德標의 생애와 의리의 실천
Ⅲ. 『우와집』의 체제와 주요 내용
Ⅳ. 辛巳獄事의 辨誣와 龍川 유배 시기의 문학세계
Ⅴ. 결론
참고문헌
〈Foreign language abstracts〉

참고문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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