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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91호
발행연도
2018.9
수록면
163 - 208 (46page)
DOI
10.37331/JKAH.2018.09.9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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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사료상에서 등장하는 문화집단으로서의 沃沮 및 北沃沮라는 용어가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토착 집단의 실체 및 高句麗의 이 지역 진출과 관련성을 검토하였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옥저’라는 용어는 본래 함흥 일대에 한정된 집단 및 지역을 지칭하는 용어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후 동해안 일대의 문화전파 등의 과정으로 인해 하나의 종족명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 명칭의 형성은 고구려의 진출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로 파악하였다.
『三國志』 東夷傳의 서술 체계에서는 옥저가 하나의 종족집단으로 비정될 수 있는 반면, 사료 내부에서 濊라는 문화권에 속한 함흥 일대의 소규모 집단의 이름으로 볼 수 있는 이중적인 요소가 있다. 기원후 1세기 무렵에 함흥 지역에서는 군현 조직이 철폐되는 한편, 얼마 지나지 않아 함흥과 두만강 유역은 모두 고구려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그런데 이 시기는 연해주 일대의 團結-크로우노프카 문화는 소멸하는 반면, 한반도 동북부 지방에는 동질의 문화권이 확산되어가는 시점이다. 때문에 이 무렵 동해안 일대에서는 공통된 문화를 공유하던 집단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들이 단일의 종족명으로 지칭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고 추정하였다. 그리고 이 용어는 太祖王代에 고구려가 함흥에서부터 두만강 유역에 이르는 지역의 지배권을 정비하면서, 역으로 이 과정의 기초가 된 옥저(함흥) 지역의 종족명을 북옥저에도 확대 · 적용시킨 결과로 보았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三國志』 東夷傳의 沃沮와 濊
III. 北沃沮와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의 관계
IV. 高句麗의 北沃沮 進出과 太祖王代 柵城 巡狩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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