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정훈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해항도시문화교섭학 해항도시문화교섭학 제19호
발행연도
2018.10
수록면
77 - 111 (35page)
DOI
10.35158/cisspc.2018.10.19.77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한국중세 지방도시 중 ‘해항도시’의 면모를 지닌 곳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였다. 고려시대 중요한 지방도시인 나주의 목포(木浦)에서 펼쳐진 다양한 해양활동에 주목하여 나주의 도시 성격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노력하였다.
나주의 해양 지향성은 잘 알려진 후삼국통일과정 뿐 아니라 고려초기 전남지방의 군현제 개편과정에서도 확인된다. 성종대 나주를 중심으로 구획한 남해도(南海道)나 해양도(海陽道)의 도(道) 명칭, 현종대 연해 도서와 탐라를 나주목의 영속 군현으로 삼은 점 등이 그 예이다.
고려시대 나주 해양활동의 중심 포구인 목포의 항만 수역에는 부두를 비롯하여 조창(漕倉), 주거지 등의 시가지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나주의 해항(海港)인 목포는 해운 물류의 거점, 수군의 전진기지 그리고 해외교류의 창구였다. 수륙 교통의 결절지인 목포에는 해운 물류창고인 해릉창(海陵倉)이 위치하였고, 이곳은 조운활동과 함께 선상(船商)들의 교역활동이 펼쳐진 전라도 최대의 항구였다. 인근 도서와 탐라와의 교류 속에서 도서민과 함께 이색적인 해양문화도 유입되었다.
또한 고려 말엽에 서남해 해역을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 격퇴하기 위해 임시 군관(軍官)이 급파되면서 나주는 남도 수군 지휘체계의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특히 나주는 친원적인 목호(牧胡)를 진압하기 위한 탐라로의 출항에 적극 활용되었다. 당시의 목포는 군영(軍營)과 군함 정박처 등을 갖춘, 왜구 방어와 탐라의 관리를 위한 전진 기지로 활용도 높은 최대의 군항(軍港)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주의 포구는 외국 문물과 새로운 고급 정보가 유입되는 창구 역할도 수행하였다. 신라 하대 회진포를 통한 나당(羅唐)간의 교류활동, 현종대 나주 팔관회의 설행, 전라도 선상들의 해외 교역활동, 도서 연해를 경유한 송 명나라 사신단과의 접촉 등을 통해 해역세계로 열려 있던 나주지역은 이국의 문화를 경험하였다. 이러한 여러 내용을 고려하면, 나주 목포는 해양강국 고려의 제2의 벽란도(碧瀾渡)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해항도시 연구의 성과와 한계
Ⅲ. 나주의 입지와 포구
Ⅳ. 나주의 해항, 목포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38)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