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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민덕기 (청주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62집
발행연도
2018.11
수록면
99 - 134 (36page)
DOI
10.18496/kjhr.2018.11.6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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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前期 조선은 일본과의 통교관계를 중국에 감추고자 하여왔다. 본 논문은 이에 대한 검토이다.
태종대의 대일 통교관계는 왜구가 중국에서 노략질한 장물을 받아주고 대신 생필품을 내주는 교린정책이었으므로 그러한 정책을 중국에 감추어야 했다. 더구나 왜구의 빈번한 침구를 이유로 영락제가 일본정벌을 제창하기도 했던 때였다.
세종대엔 被虜 중국인의 轉送이 특히 많았던 시기이다. 이 시기부터 조선이 대일통교를 중국에 은닉하려 한 이유가 구체화 된다. 중국인을 송환하면 중국이 자국연안을 노략질한 왜적을 잡아오게 하거나 그들에게 잡혀간 중국인을 轉送하게 勅令을 내릴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이에 조선은 왜인이 오면 거절하지 못할 뿐이며 조선은 도적을 금지하는 목적으로만 일본과 때로 교섭할 뿐이라고 중국에 강조하려 한다.
이러한 논리는 세조~성종대에도 일관된다. 일본 사절만이 가끔 올뿐, 조선은 수십 년에 한번쯤 사절을 파견한다고 답하려 하고 있다. 중국에 맞서려는 반역의 나라 일본과의 통교를 중국이 꺼리고 책망하기 때문에 감추는 것이라는 인식도 보인다.
중종대는 영파의 난을 일으킨 오우치씨(大內氏)가, 나포해 온 중국인 원진을 조선을 통해 轉送하려 수차례 교섭해 온 시기이다. 조선은 논의결과 원진의 奏達조차 생략하는데 그 이유는, 조선이 원진을 일본 현지에 가서 찾아 중국으로 보내라는 勅令이 내려질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중국이 자국의 對日현안을 元世祖 쿠빌라이처럼 조선에 위임시킬지 모른다는 걱정도 제기된다.
명종대에 이르러서는 중국의 ‘후기왜구’ 진압에 대한 조선 대행이 중국에서 논의되고 있고, 이에 조선이 바짝 긴장한다. 영파의 난 이후 왜구를 수차례 중국으로 압송한 것에 대해 왜구세력이 크게 두려워하는 나라가 다름 아닌 조선이라 중국이 인식한 결과였다.
이처럼 조선 前期 조선이 대일통교를 중국에 감추려 한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이 자국의 對日문제를 일본에 근접해 있는 조선으로 하여금 해결하려고 할 가능성을 차단하려 한 것이었다. 이에 대일관계를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것으로 중국에 강조하려 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태종대 대일통교 은닉관련 실록기사 검토
3. 세종대 대일통교 은닉관련 실록기사 검토
4. 세조~성종대 대일통교 은닉관련 실록기사 검토
5. 중종대 대일통교 은닉관련 실록기사 검토
6. 명종대 대일통교 은닉관련 실록기사 검토
7.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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