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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방상근 (내포교회사연구소)
저널정보
한국교회사연구소 교회사연구 敎會史硏究 第53輯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81 - 120 (40page)
DOI
10.35162/rfkch.2018.12.5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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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866년 이전 조선 천주교회가 펼친 의료 활동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지금까지 이 시기 조선 천주교회의 의료 활동은 ‘서양 의학의 도입’으로 특징지어졌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제시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 분야의 연구는 앞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새로운 연구를 위한 전단계로서, 박해시기 조선 천주교회의 의료 활동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기존에 잘못 알려진 내용들을 바로잡고자 했다. 그리하여 박해시기에 활동한 신자 의약인들의 명단과 활동을 정리했고, 시약소의 설치 여부를 명확히 밝혔다. 그리고 조선에 파견된 선교사들의 질병 치료를 통해 ‘천주교와 서양 의학의 도입 문제’를 간접적으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 조선 후기 의약업에 종사하던 신자 30명의 명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신자들을 가르치고, 신자들의 모임을 주관했으며, 전교 활동을 펼치고 북경 교회와의 연락을 담당하는 등 교회의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둘째, 최필제, 이중배, 이치영, 최 베드로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신자 의약인들은 신앙과 의료를 접목시켰다. 이들은 신앙을 바탕으로 의료활동을 전개했고, 의술을 매개로 전교 활동을 펼친 의료 전도사였다.
셋째, 조선 천주교회는 1857년에 시약소를 설립하여 서양 의약품을 나누어 준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1857년은 1859년의 오류였고, 시약소는 조선에 설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천주교회는 1859년과 1862년에 두 차례에 걸쳐 시약소를 설립하고자 하였으나 박해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넷째, 조선 후기 ‘서양 의학의 도입’은 조선 천주교회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았다. 그리고 박해시대 선교사들은 서양의 의술이나 약보다는 대체로 조선인 의사와 한약을 통해 자신의 병을 치료하였다. 아울러 당시 교회의 규정도 선교사들의 의료 활동을 제한하였고, 외국에서 도입한 서양 의약품은 구충제 정도에 불과했다.

목차

국문 초록
1. 문제 제기
2. 조선 후기 신자들의 의료 활동
3. 시약소의 설립 문제
4. 프랑스 선교사들의 질병과 치료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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