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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양인성 (한국교회사연구소)
저널정보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61輯
발행연도
2021.8
수록면
5 - 36 (32page)
DOI
10.37981/hjhrisu.2021.08.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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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천주교회의 신축교안 인식 형성과 변화를 검토한 것이다. 신축교안은 1901년 제주도에서 천주교 선교사와 신자들이 비신자들과 충돌한 사건으로, ‘이재수의 난’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건의 주요 원인은 중앙 정부에서 파견된 봉세관의 세폐(稅弊)와 선교사 및 신자들의 작폐[敎弊]였다.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의 문서를 통해 신축교안 당시 천주교회의 인식을 살펴보았다. 뮈텔 주교는 교안을 ‘무고한 신자들’이 희생된 ‘박해’라고 규정하였다. 천주교에 대한 중상모략이 주요 원인이라 보았고, 한국 관리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제주의 비신자들, 한국 관리 등이 교폐를 원인으로 지적하였지만, 뮈텔 주교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뮈텔 주교의 인식은 천주교회의 공식적인 기억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천주교회의 신축교안 인식 변화를 규명하기 위해 천주교회 신문과 잡지, 교회사 연구자들의 글을 분석하였다. 교폐를 부정하고 ‘박해’라 주장하는 인식이 여전히 강했지만, 신자들의 과실을 지적하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민란’, ‘학살사건’을 대신하여 ‘교난’, ‘교안’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천주교회의 인식은 제주사회의 인식과 큰 괴리를 보였다. 제주사회는 교안의 원인으로 교폐만을 강조하였고, 이재수를 영웅시하였다. 이러한 인식 차이로 인해 천주교회와 제주사회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대립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양측은 1990년대 후반에 대화하기 시작하였고, 2003년에 「화해와 기념을 위한 미래 선언」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천주교회와 제주사회는 여전히 각자의 관점에 따라 신축교안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있다. 양측 간의 ‘진정한’ 대화와 화해는 앞으로의 숙제로 남아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신축교안 당시 천주교회의 인식
3. 천주교회의 신축교안 인식 변화
4. 신축교안 인식을 둘러싼 갈등과 대화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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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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