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범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우리문학회 우리문학연구 우리文學硏究 제61집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55 - 182 (28page)
DOI
10.20864/skl.2019.01.61.155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다수의 선행연구들은 1910년대를 근대적 문학의 기점으로 이해해왔다. 이 과정에서 이광수의 문학론과 지정의 담론은 주요한 근거였다. 그런데 이럴 때에는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대표적으로는 이광수 이전의 문학적 논의들이 간과될 가능성을 들 수 있다. 또한 근대문학의 형성과정에서 지정의 담론의 역할을 부인하기 어렵지만,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것이 일본을 거쳐 도입된 시기가 1900년대 중반이라는 점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논문은 각 장에서 다음과 같은 논의를 진행했다. 국권 피탈 직전에 발표된 이광수의 글은 당대 여타 지식인들의 인식을 벗어나지 않았다(Ⅱ). 일본의 지정의 담론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이들은 헤르바르트 학파였다. 그들의 이론은 칸트의 비판철학에 토대를 두고 심리학과 교육학을 아우르고 있었다. 칸트의 철학은 1900년을 전후로 동북아에서 각광을 받는 상황이었으므로, 헤르바르트 학파의 이론이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었다(Ⅲ). 1900년대 중반의 을사늑약은 이를 가속시켰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민간 주도의 교육으로 상황을 타개하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유근의 「교육학원리」가 나오게 된 연유도 이런 정세와 관련된다. 그리고 이 글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저자를 유근으로 특정했으며, 1900년대 중반 이후 조선 지식인들이 가졌던 정신의 지형도를 추론해 볼 수 있었다(Ⅳ). 지정의론과 칸트철학 그리고 성정론의 요소가 모두 섞여들어 있는 유근의 글은 신구의 문화가 충돌하는 현장을 증언하고 있었다. 이러한 충돌과 반동 및 교섭이 지속될 수 없었던 것은 비극이지만, 1900년대를 기억하는 한국 정신사의 일절로 포섭되어야 할 것이다. 1910년대 이후의 한국 문학은 이러한 정신사의 기록 없이는 과거와 단절된 천애고아에 불과할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회귀 원점으로서의 이광수
Ⅲ. 1900년대의 동북아시아와 교육학 · 심리학 · 철학
Ⅳ. 「교육학원리」의 저자와 1900년대 조선 지식인의 모색
Ⅴ. 결론
참고문헌

참고문헌 (47)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9-810-000425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