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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재홍 (국민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45호
발행연도
2019.4
수록면
269 - 297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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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류굴, 천전리, 점말동굴의 석각은 바위의 벽면을 다듬어 글씨를 새겼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명문에는 출신지인 部名을 갖추지 않거나 단지 인명만 있는 예가 있다. 이것을 작성한 연대로는 癸亥년이 있다. 이 계해의 서체가 성류굴과 점말동굴의 것이 다르며, 이체자를 사용한 성류굴의 석각은 543년에 작성되었고 점말동굴의 것은 신라 통일기로 추정된다. 계해년은 60간지의 마지막 해로써,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음이 쇠하고 양이 흥하는 때이므로 화랑이 이 곳에서 수련이나 의식을 행하고 이를 기념하는 명문을 새겼던 것이다.
석각에 나오는 인물들이 부명 등 출신지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출신 지역을 떠나 조직된 화랑도와 관련되어 때문이다. 신라 중고기에 인명을 표현할 경우에 “직명+출신지명+인명+관위명” 등을 순서대로 표기하였다. 이러한 표기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출신지나 관위명에 얽매이지 않는 집단과 관련이 있다. 지연을 떠나 개인과 개인이 관계를 맺는 존재는 ‘門客’, ‘門徒’, ‘門下’, ‘客’, ‘幕客’ 등으로 표현되었다.
신라 화랑도는 신라 국가가 율령적 질서를 통하여 중앙집권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집단이다. 신라 중고기에는 도성을 6부로, 지방을 촌으로 편제하여 지역 단위로 지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중앙과 지방에서는 개인 간의 신뢰에 기초한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한 특정 집단이 등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화랑도이며, 화랑과 낭도의 주종 관계에 의해 성립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와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에는 서약을 통하여 관계를 지속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각석에 새겨진 화랑의 자취
Ⅲ. 화랑과 서약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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