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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기경량 (가톨릭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64輯
발행연도
2019.7
수록면
139 - 16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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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長安城은 고구려 후기의 都城이다. 北城 · 內城 · 中城 · 外城의 4개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가장 먼저 축조된 것은 내성이다. 평양성 출토 각자성석 제4석에 따르면 566년에 장안성 내성이 축조되었다. 장안성의 중성과 외성은 제1석, 제2석, 제3석의 내용에 따라 589년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된다. 먼저 조영된 내성과는 23년의 시간차가 존재한다.
그간의 연구에서는 전체 장안성의 축조를 단일 프로젝트의 산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하지만 축성 시기의 시간차를 감안한다면 장안성 내성과 중성ㆍ외성은 별개의 기획에 의해 조영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내성에서는 바둑판 형태의 격자형 도시 구획이 확인되지 않는 데 반해 중성과 외성에서는 격자형 도시 구획이 확인된다는 점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566년 축조된 장안성 내성은 別宮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前代에 있었던 정변을 통해 위엄이 크게 손상된 왕의 거처를 대신할 수 있는 곳에 새롭게 왕궁을 지어 정치적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반면 기존에 조영된 내성에 덧대어 589년에 새로 조영된 중성과 외성은 외적의 침입에 대한 군사 방어적 성격이 강하다. 이는 589년 隋가 마지막 南朝 국가였던 陳을 멸망시키며 중국 대륙을 통일한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
수는 582년 격자형 구획으로 조영된 大興城을 조영하고, 583년에는 새로운 수도로 옮겼다. 장엄하고 질서정연하게 구획된 도시 형태는 584년 대흥성을 방문한 고구려 사신단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고 여겨진다. 이후 고구려는 대동강과 보통강으로 둘러싸여 방어에 유리한 지형에 중성과 외성을 쌓아 수의 침입을 대비하는 한편 성곽 안쪽에는 격자형의 도시 구획을 갖춘 신도시를 만들고, 본래 대성산성 남쪽에 거주하고 있던 왕도의 주민들을 대거 이주시키는 정책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같은 평양 권역 내에서의 가까운 이동이었음에도 ‘移都’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장안성 중성 · 내성의 구조와 활용
Ⅲ. 장안성 축조의 목적과 전개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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