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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응종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91輯
발행연도
2019.7
수록면
285 - 319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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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레가 시도한 공화주의 프랑스혁명사의 주인공은 민중이다. 민중이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미슐레의 혁명사가 나오기 전에는 아돌프티에르와 프랑수아 오귀스트 미녜만이 체계적인 혁명사 연구서를 발표했는데, 이들은 사회적 측면이나 경제적 측면은 무시했고 혁명을 부르주아지의 위업으로 파악했다. 미슐레는 부르주아지에서 민중으로 주인공을 이동했다는 점에서 사학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미슐레는 민중이 혁명 전선에서 물러나고 엘리트 혁명가들이 혁명을 주도하면서 혁명이 탈선했다고 본다. 미슐레에게 있어서 로베스피에르가 주도하는 공포정치 시기는 혁명이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사회적 민주주의로 심화되는 시기가 아니다. 미슐레가 그리는 로베스피에르는 민중의 염원을 실천하는 민중의 벗이 아니라 “군주”, “신”, “우상”과 다르지 않았다. 혁명과 전쟁이라는 위급한 상황에서 불안해하고, 의심하고, 고발하고, 감시하고, 처벌하는 인물이었다. “청렴자”요 ‘덕’의 정치가라기보다는 내적 정화에만 사로잡힌 중세의 이단재판관과 같은 인물일 뿐이었다. 미슐레에게 있어서 공포정치는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기 위한 비상조치이기는 했으나 ‘상황’의 산물인 동시에 자코뱅적 광신의 소산이었으며, 승리의 수단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적을 만들어내었고 최종적으로는 혁명을 파괴하였다는 점에서 반혁명적이었다.
유명한 반교권주의자인 미슐레는 중세 가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선악이분법에 사로 잡혀 있었다. 혁명은 선이었고 반혁명은 악이었다. 미슐레는 가톨릭교회가 반혁명의 온상이었다고 비판할 뿐 그 가톨릭교회가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서 보장한 재산권을 빼앗겼으며 세속 권력의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슐레는 방데의 농민들이 가톨릭 근왕군을 결성하여 반혁명에 나선 것에 대해서도 그들이 광신적인 신부들의 선전에 넘어가 야만적인 폭력을 행사한 무지몽매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강조할 뿐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충분한 배려를 하고 있지 않다.

목차

「국문 초록」
Ⅰ. 머리말
Ⅱ. 민중과 엘리트
Ⅲ. 반(反)혁명의 보루, 교회
Ⅳ. 반(反)사회주의 역사학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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