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왕현종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69輯
발행연도
2019.8
수록면
5 - 52 (48page)
DOI
10.31335/HPTS.2019.08.69.5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에서는 갑오개혁이후 대한제국기 조선인의 일본 유학에 대해 갑오개혁 이후 유학생 파견 정책의 변화와 일본 유학생들의 자치단체인 친목회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관비유학생 파견은 주로 일본 게이오 의숙에 무려 195명 정도로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갑오개혁정부는 처음에는 독자적인 고등교육체계를 구상하고 있었지만, 일본의 압력하에 대학설립 구상이 포기된 채, 대규모 관비유학생 파견으로 전환하였다. 이에 후쿠자와 유키치의 게이오 의숙에 맡겨진 유학생들은 일본어 교육과 기초교과를 바탕으로 대학·전문학교 등 상급학교로 진학에 대비하였다. 또한 조선 유학생들은 자체적으로 친목회를 결성하여 주기적인 단체모임과 매달 정례 학술 모임을 통하여 결속을 다지고 선진 학문 수용과 여론 형성을 주도하였다. 이들의 주제 강연은 유학생 잡지인 『친목회 회보』(1~6회)에 수록되었는데, 유학생의 학업과 친목회 활동에 당부하는 글, 국민의 각성과 애국 논설, 국왕에 대한 절대적인 충군애국 강조, 전공 학문에 대한 소개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들 조선 유학생들은 서구의 정치원리나 법적 체계를 비롯하여 최신 동향을 소개하고 나름대로 논점을 제기하고 있었다. 이 글에서는 주목한 것은 친목회규칙에 수록된 특별찬성원들이었다. 이들은 유학생 관리를 맡은 후쿠자와 유키치 등 게이오 의숙 관련자들뿐만 아니라 일본 주요 대학의 학장들과 일본 의회 및 법률관계 종사자들을 망라하고 있다. 110명의 특별찬성원들은 조선유학생들이 각 대학의 전공분야를 선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대한제국기에 들어와서 한국정부는 유학생 파견과 관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데 실패했다. 관비 유학대상자의 축소와 학자금 지급 등이 지연되었다. 졸업 이후 귀국한 관비유학생들은 주로 정치·법률학 관료나 학자로서 나아갈 수도 있었으나 1904년 이전까지 제대로 그런 분야에 진출하지 못했다. 본 논문에서는 갑오개혁 이후 조선 유학생들의 일본 파견과 학술활동을 전반적으로 분석하려고 하였다. 특히 친목회의 특별찬성원과의 연계망에 주목하여 유학생들의 전공 분야 선택의 관련성을 밝히려고 하였다. 그리고 졸업 후 조선유학생들의 관료 및 사회활동상을 개인별로 추적하여 살펴보았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갑오개혁기 관비유학생의 파견과 게이오의숙
Ⅲ. 대한제국기 관비 조선유학생의 대학 진학과 졸업 후 활동
Ⅳ.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