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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역사 여성과역사 제8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59 - 91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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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월 군사정변을 통해 탄생한 제3공화국은 민심을 수습하고 정권의 명분을 내세우기 위해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 계획 중의 하나로 가족계획사업이 포함되었다. 이 사업 초기에 기독교 여성들은 다산의 관념과 남아선호사상, 그리고 성서의 생명윤리 등에 입각해서 그다지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배경 때문에 기독교 여성들은 이 사업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추적해 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한국 기독교가 가족계획사업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은 WCC와 미국 기독교의 영향, 반공주의 사상 등에 있었다. WCC는 미국 기독교가 주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영향이 매우 컸다. 동서냉전기에 미국은 자유 우방의 청지기로 자처하면서 공산주의권 국가들의 세력 확대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미국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빈민국과 공산주의 권 교회를 외면한다면 분명 공산주의세력이 그곳을 장악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맹목적인 반대보다는 오히려 공산주의세력의 확대를 막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미국 기독교와 WCC는 공산주의권 교회와 제3세계 빈민국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WCC와 미국 기독교를 이해하지 못했다. 재정적으로 절대적인 의존을 하고 있었지만 한국 전쟁을 경험했기 때문에 북한 정권을 사탄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극단적인 반공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196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 한국 기독교는 WCC와 같은 노선을 걷게 되었다. 그것은 급속한 산업화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결과가 북한의 침투로 나타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문제 해결에 기독교가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노선 전환의 일환으로 한국 기독교는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가족계획을 적극 지지한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기독교 여성들은 수태, 출산 등을 조절하고 있었지만 항상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NCC에서 이러한 선언을 하자 죄의식에서 기독교 여성들은 자유로워졌다. NCC는 가족계획은 성서에 근거한 것이므로 정당하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독교 여성들은 공공연하게 가족계획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 과정에서 기독교 여성들은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남아선호사상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족법 개정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기독교 여성들은 가족계획사업 홍보를 위한 성서적 해석이나 그러한 논쟁에 뛰어들 수는 없었지만 이 사업을 여성의 법적 지위 향상의 기회로 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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