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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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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22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09 - 14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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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정몽주를 배향하는 여러 서원 중에, 울산의 구강서원과 언양의 반구서원에 대해 검토한 것이다. 서원은 향촌사림의 여론을 수렴하는 일차적 거점이었다는 점에서 붕당정치가 본격화되는 17세기중반 이후 그 역할은 증대되었다. 또한 향촌사림은 붕당정치의 전개과정 속에서 고립을 면하기 위한 중앙 정치세력과의 연계와 나아가 자신들의 향촌활동을 위한 거점으로서 서원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이러한 양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이 시기 서원․사우가 폭발적으로 남설되어 나갔다. 구강서원과 반구서원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일향사림의 공동 협력에 의해 건립된 서원이다. 서원건립은 일차적으로 강학이 목적이었지만 사현(祀賢)의 기능도 있었다. 따라서 서원이 건립되기 위해서는 제향 할 만한 인물이 있어야 한다. 제향인은 서원 소재지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어야 하고, 또 그 자격기준으로 원래는 ‘반드시 학문이 깊고 사문(斯文)에 공이 있는 자’라야만 가능하였다. 그러나 울산과 언양에서는 본 읍 출신으로 서원에 배향할 만한 마땅한 유현(儒賢)이 아직 없었다. 이에 구강서원은 울산 출신이 아닌 인근 영천․경주 출신의 정몽주․이언적 두 유현을 각각 “정몽주는 속현(屬縣) 언양에 2년여 간 적거(謫居)하였고, 이언적은 이웃에 거주하면서 끼친 유화(儒化)가 크다”는 연고를 들어 건립하였다. 이어 언양에서도 같은 이유로 정몽주와 이언적을 그리고 구강서원과 동일인물을 첩설한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하여 정구를 추가하여 반구서원을 건립하였다. 이렇게 볼 때 구강서원과 반구서원은 정몽주가 아니었으면 당시에는 건립될 수 없었던 서원이었다. 본고에서는 구강서원과 반구서원에 제향인으로 선정된 정몽주의 언양 적거와 관련된 내용 및 두 서원이 건립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과 설립과정을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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