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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62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75 - 103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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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모든 사람이 姓을 갖게 된 것은 갑오개혁 이후 신분제가 폐지되고 민적부가 만들어진 이후로 알려져 있다. 그 이전에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성을 갖지 못한 無姓層으로 존재했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언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성을 갖게 되었는가. 이 글은 위 문제의 해명을 위해서 조선후기 姓貫의 실태가 어떠했으며, 성관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또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성관을 가지게 되었는지 등의 문제에 대해 분석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경상도단성현호적대장」을 통해 살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되었다. 1. 17세기 후반 전체 호 중 50% 정도였던 有姓貫戶(A)가 불과 100년이 조금 더 지난 시기인 19세기 전반 99%의 비율을 점유하였다. 2. 18세기 有姓貫戶가 급증했던 양상에 반해 동일한 시기 성관의 수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는 당시 사회의 성관에 대한 우열관념에서 비롯된 改貫의 진행때문이었다. 改貫은 아직 완전한 성관을 갖지 못하고 본관만 기재했던(B) 사람들이 성관을 획득해 가는 과정에서도 역시 본관을 바꾸는 경우가 상당수 이루어졌던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3. 완전한 성관을 갖지 못한 과도기적인 호(B)나 성관이 없는 호(C)는 대부분 노비호였다. 무성호(B,C)였던 노비호가 유성관호(A)가 되는 것은 양역을 비롯한 국역부담자층의 확보와 일정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 4. 무성호(B,C)가 성을 갖게 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혈연적인 연관이 있는 경우이다. 둘째, 혈연적인 연관이 없이 성을 취하게 되는 경우이다. 첫 번째의 경우 賤妾 소생인 孽子들이 곧바로 父의 성관을 쓰지 못하다가 世代가 지난 아들, 손자代에 이르러서 성관을 쓰는 사례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위의 경우처럼 혈연적 연관성이 있는 성관을 칭하는 경우보다는 혈연적 연관이 없이 성관을 갖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원래 성관이 없었던 노비간의 결합을 통해 태어난 노비들이 상당수였기 때문이다. 혈연적 연관성이 없이 성관을 갖는 경우 기존의 성, 특히 단성지역의 대표적 성관인 김해 김씨와 안동 권씨를 칭하는 사례가 가장 많았다. 이는 상대적으로 칭하기 쉽거나 사회적 위세가 있는 성관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상당수 한국인이 성관을 갖게 된 것은 조선후기인 것으로 보이며, 지속적인 개관의 진행으로 현재 가지고 있는 한국인의 성관의 외형 역시 조선후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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