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71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43 - 66 (2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지방관이 거주하던 읍치지역의 인구 구성은 사족과 농민의 생활공간인 촌락지역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 지역은 행정사무를 보던 향리층을 비롯하여 군관, 포졸, 관노비 등 대다수의 관속층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관아에 물품을 납품하던 장인층, 상인층도 읍치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특히 대구의 읍치지역은 감영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인구층이 더 많이 분포하고 있었다. 이 지역의 계층별 호수의 변화를 살펴보면, 먼저 상층호의 호수와 점유율은 시기가 지날수록 늘어났다. 그런데 상층호의 변화양상은 동일한 시기 대구의 농촌지역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농촌지역 상층호의 점유율은 19세기에 와서 65%를 넘어서는데 비해, 읍치지역인 동상면 상층호의 점유율은 10%내외에 불과했다. 농촌지역과의 차이는 중층호나 하층호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역에 따라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부세 수취방식의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조선사회는 개별인신적 부세수취 대신에 면 혹은 리 단위로 세금을 총액제로 거두었다. 따라서 상층인구를 의미하는 ‘幼學’을 칭하더라도 동네에 부과된 부세에 대해 납세의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읍치지역은 그 직업구성이 행정관아와 연관된 경우가 많아 농촌 지역과는 달리 여전히 개별 인신적으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대구부 읍치지역 인구구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향리층은 18~19세기 중엽에 걸쳐 110개의 성관에서 모두 1,264명이 확인되는데, 이 가운데 436명이 5개 성관 출신이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대구부 동상면은 전통적인 향리층이 향리사회를 주도하는 상황 하에서 면내에 상존하는 다른 계층에서도 부내의 행정 업무를상당부분 담당하던 행정중심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14)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