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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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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44권
발행연도
2003.1
수록면
113 - 179 (6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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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가는 목포가 개항되고, 이어 미곡의 대일본 수출이 증가하는 시대적 조류를 타고 대지주로 성장했다. 박씨가는 대규모의 토지를 매득함으로써 대지주로 성장하였는데, 미곡의 상품화, 고리대, 우도경영 등을 통해 토지 매입자금을 조달했다. 토지 매입자금 가운데 중심을 차지한 부분은 지주경영을 통해 획득한 미곡 판매대금이었다. 박씨가는 年雇로 계약한 머슴과 日雇, 즉 품값을 지불하는 노동력에 의존하여 적지 않은 가작지를 경작했지만, 지주경영의 중심은 소작지경영이 차지했다. 박씨가는 일찍부터 세거지를 떠나 생활했기 때문에 온정주의적 차원에서 동족을 우선적으로 배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 결과 박씨가의 두락당 지대량 수준은 전라도 여타 지주가의 두락당 지대량에 비해 상당히 높다.박씨가는 지대수입, 그리고 牛賭經營과 고리대를 통해 증식한 돈을 다양한 곳에 투자하였다. 1920년대 들어 湖南銀行의 주식을 사들이고, 금융조합에 출자도 하고, 전기회사에 투자하기도 했다. 간접 투자뿐만 아니라 직접 투자도 했다. 박준삼은 羅州協同商會에 자금을 투자하고, 나아가 상무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대규모 精米所를 직접 경영하기도 했다.이런 와중에서 일종의 농외투자로 볼 수 있는 보증을 여러 번 섰다가 보증을 선 어음이 부도처리 되면서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 그 결과 박씨가는 1930년대 들어 갑자기 중소지주로 몰락하고 말았다.주제어地代, 高利貸, 牛賭, 家作, 年雇, 日雇, 小作, 農外投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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