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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방학지 동방학지 제152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301 - 337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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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시구개수의 목적은 한양 정도 이래 500여년의 역사가 축적된 경성 도심부의 도로망을 근대적 격자형 공간구조로 재편하고자 한 것이었다. 따라서 시구개수의 전개는 기존의 전통적 공간질서와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충돌을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사례로 시구개수 제6호선(현재의 율곡로)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제6호선은 전통적으로는 ‘도로여서는 안되는 곳’인 창덕궁·창경궁과 종묘 사이 통과 구간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6호선 부설을 둘러싼 갈등 구도에 대한 현재의 통설은 이것은 식민지권력이 민족의 맥을 절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설한 것이며 당대 조선인은 이 도로의 부설에 부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창덕궁·창경궁과 종묘 사이 통과 구간의 도로 부설은 1922년 최초의 도로 예정선 측량을 시도한 이래 1932년 준공 때까지 10여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렇게 긴 시간이 소요된 이유는 그만큼 이 구간의 도로 부설을 둘러싼 논란이 많았기 때문이다. 도로 부설을 시도한 식민지권력의 논리는 ‘교통의 편리’라는 근대적 기준이었다. 그리고 도로 부설에 지속적으로 반대한 순종 등 구왕실의 논리는 조선왕조의 핵심적 상징인 종묘의 존엄을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선어 언론은 통설과 달리 식민지권력과 ‘교통의 편리’라는 ‘근대적 기준’을 공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제 시대가 변했으니 종묘를 개방하여 공원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상에서 현재의 통설은 식민지시기 제6호선 부설의 경위에 대해 당시에 실재하지 않은 단일한 민족적 정서를 ‘상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남겨진 식민지유산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이러한 ‘상상’이 ‘상상’에 불과함을 밝히는 데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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