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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33호
발행연도
2004.1
수록면
35 - 6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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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오랜 왕조 정부의 역사에서 종묘는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종묘는 그 왕조 왕가의 영속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중심적 지위가 강조되었다. 그러나, 제의가 정치형태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가의 문제는 그에 관한 단순한 기록과는 달리 복잡하다. 왕조체제와 왕조의 주요한 제의들이 놀랄 정도로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학자 엘리트들의 열성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이 논문은 당대 이 학자 엘리트들이 종묘제의의 문제에 매우 민감했었다는 사실을 밝히려 한다. 학자 엘리트들이 관계함으로써 의견의 불일치가 발생했고 또한 계속적인 논쟁이 일어났다. 이런 논쟁들은 이념적 차원에서, 혹은 제도적 차원에서 혹은 개인적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 제의와 제의에 관련된 문서들은 당 정치생활의 한 패러다임(범주)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다루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주장이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이후 연구의 과제다. 당의 정치형태는 ‘궁정-관료제(palace-bureaucracy)’ 체제 혹은 ‘억제된 정치 중심(inhibited political centre)’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 왕조 정치형태를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서 상징․의례적 중심은 종묘제의였다. 종묘제의는 왕가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매우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관료제의 학자적 요소와 황제에게 영향을 끼치는 다른 요소 사이에 날카롭고 무자비한 대립이 있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많은 기록들이 종묘의 경우 제사의 처리와 규모 그리고 제의의 이행에 영향을 끼치려는 계속적인 시도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제의에는 제관을 비롯한 관련 관리들뿐만 아니라 평민에서 재상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종묘는 학자 관료들이 자신들의 주요 관심사를 제기할 수 있는 핵심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 가운데 하나가 절제의 필요성에 관한 것이었다. 수많은 방법으로 절검에 관한 문제를 표현할 수 있었지만, 시호의 제한도 그 한 방법이었다. 또 다른 것은 종묘의 죽은 황제들에 대한 제사에 대한 제한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일반적인 관심은 정통실천(orthopraxy) 즉 제의의 정확한 이행에 관한 것이었다. 종묘를 둘러싸고 발생한 논쟁은 심오한 문제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절차와 이행의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의 논쟁이 허용되거나 때로 황제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논쟁이 급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의 정치적 이념은 급진적으로 다른 정부형태를 허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적 욕망보다 전체의 이익이 우선한다는 등의 몇몇 수사적 개념들은 당 정치철학가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이 문제는 종묘와 관련 없는 글 속에서도 여러 차례 제기되고 있다. 다만 학자 엘리트들은 왕조의 상징적 중심인 종묘와 관련하여 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황제에게 황제도 일정한 틀과 제한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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