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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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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학사학회 韓國史學史學報 韓國史學史學報 제32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493 - 525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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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r. 1608-1623)은 한 조카가 주도한 계해정변(인조반정)으로 왕좌에서 강제로 축출되었다. 정변 바로 다음날 대비의 이름으로 반포된 반정교서에 따르면, 정변의 명분 곧 광해군의 죄상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군부의 나라인 명을 배반하고 이적인 후금과 화친을 도모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후를 핍박하고 형제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광해군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평가는 조선왕조가 망할 때까지 동요 없이 거의 절대적인 평가로 자리 잡았다. 이런 전통적 평가에 대한 비판은 1930년대에 처음 등장했다. 이른바 근대 역사학자들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광해군이 취한 외교노선을 중립정책이자 당시 조선왕조가 취할 수 있었던 최선의 정책으로 새롭게 평가하였다. 그들은 이른바 廢母殺弟 행위에 대해서도 그 책임을 당시 권력을 농단하던 北人에 돌림으로써 광해군에 대한 평가를 긍정적으로 바꾸었다. 이런 수정주의적 해석은 해방 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사실상 통설이 되었다. 2000년에 출간된 한명기의 『광해군』은 이런 수정주의적 흐름을 잇고 그것을 집대성한 책이다. 그런데 2012년에 출간된 오항녕의 『광해군』에서는 이런 수정주의적 해석을 전면 부정하고 광해군에 대한 평가를 조선시대의 상태로 회귀시켰다. 이 비평논문에서는 이 두 책을 함께 놓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되, 국왕으로서 광해군이 행한 몇몇 정책뿐 아니라 그의 삶과 심리상태에도 중점을 두어 사안별로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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