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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퇴계학연구원 퇴계학논집 퇴계학논집 제17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223 - 252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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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조선유학사에서 예학은 사계와 한강이 활동하던 17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본격화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16세기 퇴계 이황에 의해 조선 예학은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이처럼 퇴계는 조선 예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학과 관련한 저서나 편찬서를 남기지 않았다. 다만 『退溪先生喪祭禮答問』처럼 평소 문인이나 지인들과 주고받은 왕복서 중에 예를 주제로 한 답문들이 문인 또는 후학들에 의해 발췌ㆍ편찬되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퇴계가 예서를 남기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퇴계가 예서를 저술하지 않은 이유는 연구역량이나 수준의 문제라기보다 예서를 저술한다는 것에 대한 퇴계의 생각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사실 예란 사회적 규범과 일상의 양식을 규정한다. 따라서 이에 관한 논의를 저술로 남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矯俗의 의미를 가지며, 결과적으로 그것은 일종의 사회개혁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퇴계가 예와 관련한 저술을 남기지 않은 것은 이 부분에 지나칠 정도로 신중을 기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퇴계는 직접 예서를 저술하거나 편찬하지 않았지만, 문인에 의해 편찬된 『퇴계선생상제례답문』은 예학과 관련한 퇴계의 대표적인 문헌자료로서 기능하였다. 물론 『퇴계선생상제례답문』은 간행초기부터 그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이후 조선 예학의 발전에 든든한 토대가 되어주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퇴계선생상제례답문』은 지속적으로 수정되고 보완되면서 더 완벽한 형태의 퇴계 예설집을 구축해가는 시발점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퇴계의 후학들에 의한 퇴계 예설집 구상은 『퇴계선생상제례답문』과 거의 동시에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퇴계의 예설에 대한 수요가 일찍부터 제기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퇴계선생상제례답문』 이후 세대들은 지속적으로 『퇴계선생상제례답문』을 수정하고 보완하되, 특히 類編 형식을 지향하면서 考閱의 편의성을 제고하려는 데 주안점을 두고 퇴계 예설집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현상은 퇴계의 예설이 조선시대에 예를 논하는 장에서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고 참고자료로서 기능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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