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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육군군사연구소 군사연구 군사연구 제142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47 - 17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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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전쟁 기 공산권의 정전협상 논의 태동과 협상과정에서 김일성의 ‘동의 여부’와 그 배경을 연구하는 데 있다. 김일성은 중공군의 5차전역이 실질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인식한 이후에도 줄곧 공세적 전쟁 수행과 완정론(完征論)을 견지했다. 이는 다분히 김일성의 정치권력 유지와 연계된 측면이 크다. 38도선과 유사한 전선에서의 전선 교착과 정전협상 국면은 지도자의 책임론과 맞물려 있다. 더구나 남한의 이승만은 북진통일론을 견지하고 있었고, 정전협상의 전개가 공산권 측 의도대로 움직일 것이라고 확신하기에는 상당한 불확실성이 존재했다. 특히 중공군이 참여한 상황에서 연안계의 역할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았고, 뻬이징(北京)이 협상 전면에 나선 상황에서 모스크바도 김일성의 정치권력 보호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김일성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 정치권력이 절대적으로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공산권의 정전협상 논의 초기, 김일성은 이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더 나아가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스탈린이 마오쩌둥의 정전협상 추진에 동의함으로써 모스크바는 워싱턴에 정전협상 추진을 제의하게 되었고, 김일성은 마지못해 정전협상에 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0년 12월 중조연합사령부가 설치된 이후 김일성은 북한군 내부에 총정치국을 설치했고, 소련파의 핵심인 허가이를 숙청하였으며, 정치적 영향력이 큰 직책에 연안계를 배제시키는 등 내부 정치권력 확립을 견고히 추진해 나가고 있었던 점은 정전협상 논의를 수용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다. 전후 관계를 볼 때, 김일성은 최소한의 자율권이 보장되고 또한 소련군사고문단의 영향력을 정전협상과 내부 권력유지에 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전협상 논의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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