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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근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92輯
발행연도
2019.10
수록면
359 - 385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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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후기의 정국은 급격하게 변동하였다. 神宗이 사거하고 나이 어린 哲宗이 즉위하자 宣仁太后가 섭정을 하게 되었다. 이전의 신법은 모두 파기되고 전면적으로 구법을 채용하였다. 이어 철종이 친정하며 다시 신법 정치로 회귀하였다. 휘종 시대에도 신법 정치가 행해졌다. 하지만 이때의 신법은 왕안석 시대의 개혁적 면모를 잃은 것이었다.
남송이 건립된 이후에는 휘종 시대의 정치에 대한 반발로 왕안석 및 신법을 부정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남송의 朝野에서는 왕안석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주류를 점하였다. 이러한 부정적 평가는 朱熹의 등장으로 더욱 견고해졌다. 주희는 新法에 대해 일부 호의적 평가를 가하기도 하였지만, 왕안석의 정책으로 인해 유교적 덕목이 심대하게 손상되었다고 총결하였다. 이러한 주희의 평가와 함께 왕안석에 대한 전근대 지식인의 인식은 확정되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왕안석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을 보이는 지식인이 등장하기도 했으나 그것은 왕안석과 同鄕의 인사들 몇몇에 불과하였다.
원대로부터 청대에 이르는 전근대 시기에도 기본적으로 주희와 동일한 시각의 평가가 주류를 점하였다.『송사』나 『四庫全書』의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왕안석은 惡人이라 이해되었고, 新法은 백성에게 큰 해악을 끼친 존재라고 일컬어졌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북송말의 정국 변화와 당쟁
Ⅲ. 남송 시대 왕안석을 둘러싼 논란
Ⅳ. 원대 이후 왕안석 평가의 변천
Ⅴ. 맺음말
參考文獻
Abstract

참고문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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