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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동서철학회 동서철학연구 동서철학연구 제93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09 - 255 (4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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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에게 죽음은 자아 유아론적(egoistic solipsistic) 죽음, 다시 말하면 죽음의 각자성(jemeinigkeit, mineness)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죽음은 인간 현존재(Dasein)의 전체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에게 죽음의 의미는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라는 점, 아직-아님과 항상-이미의 존재론적 구조를 가진다는 점, 죽음은 고유한 존재가능이라는 점, 즉 죽음은 현존재의 불가능성의 가능성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죽음을 향한 존재는 아직 경험되지 않았지만 이미 닥쳐 있는 임박한 종말로 죽음을 향해 앞질러(Vor) 달려갈 수 있다(laufen)는 점, 즉 현존재 자신은 가장 고유한 가능성 속에서 앞에 서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죽음에 의미가 인간 현존재에게 적용될 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모두가 대중 속에 있는 그들-자아이고 이 속에서는 본래적 자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란 아무도 아닐 수밖에 없고 아무도 아니다. 무한 긍정을 통해 무한 자본만을 획득하는 그들-자아의 일상성을 깨고 자신의 존재가능을 실현하며 계속 성취해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죽음을 향한 존재 앞에서 자신의 현존재를 문제시하며 의문을 던지는 본래적 자기이다. 이에 비해 레비나스의 타자의 얼굴에 노출된 연약성은 그의 가사성이나 죽음을 의미하며, 그에게 얼굴은 타자의 죽음을 노출시킨다. 레비나스에게 신비로서의 죽음은 주체가 주인이 될 수 없는 사건이며 그 사건과의 관계에서 주체는 더 이상 주체가 될 수 없다. 하이데거와는 다르게 죽음은 나의 죽음이 아니라 사건과 주체간의 심연을 도입한다. 죽음은 대상을 환대하고 환영하는 사건에 마주하는 관계를 도입한다. 레비나스의 죽음 이해가 타자나 타자성과 관련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레비나스에게 형이상학적 욕구는 다름 아닌 타자에 대한 욕구이다. 죽음은 주체에게 낯선 것이나 타자이다. 죽음은 절대적 타자이다. 타자는 미래이다. 그래서 죽음은 미래와 같은 타자이다. 하이데거의 죽음은 현존재의 본래적 자기성을 정립시키는 현존재의 고유한 존재가능의 근거인 반면에 레비나스에게 죽음은 절대적 타자성이다. 레비나스에게 죽음은 타자와의 관계 물음의 근거이다. 레비나스에게 하이데거의 죽음을 향한 나의 존재는 죽음을 향한 타자의 존재로, 다시 말하면 내가 죽음을 향해 있다는 것이 타자가 죽음을 향해 있다는 것으로 바뀐다. 논자는 이러한 하이데거와 레비나스의 죽음관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일견 대립해 보이는 두 견해가 오히려 포스트모던 시대의 우리에게 유의미가 있다는 점을 제시할 것이다. 논자는 이러한 하이데거의 자기중심적 죽음이해와 레비나스의 타자 중점적 죽음이해가 무한 긍정, 무한 능력, 무한 경쟁을 통해 무한 자본, 공간, 권력 등을 소유하며 편안함과 안락함, 즉 포스트모던인들의 삶의 조건들을 추구하는 포스트모던 시대 현대인들의 사유와 삶의 방식에 통찰력 있는 함의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모색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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