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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74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83 - 109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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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역 3.1운동에서 여성들은 군중동원, 태극기 제작, 격문과 선언서 인쇄 및 배포를 담당하고 시위 군중을 이끄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조직적 저항운동의 대표적인 집단이 광주 수피아여학교, 전주 기전여학교, 목포 정명여학교 학생들이었다. 본고는 수피아, 기전, 정명여학교 학생들이 3.1운동 과정에서 조직적 주체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을 학교의 설립과정과 교육이념, 민족의식의 성장 등을 통해 살펴보았다. 위 세 학교는 모두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설립한 기독교계 여학교이다. 선교사들은 선교사업의 일환으로 학교를 설립했지만 근대적 공교육 시스템이 거의 없던 당시, 이들은 지역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특히 여성들은 기독교계 학교를 통해 새로운 문물·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대 환경에 적응하려고 했다. 기독교계 학교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민주주의 교육과 자유·평등사상에 의한 자주적 교육활동 등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교육의 최대 목표로 설정하였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근대의 시대정신, 국가의식, 민족의식을 배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3.1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이들의 저항은 3.1운동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수피아여학교에서는 열세집, 반일회, 백청단 등의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는 한편 정명여학교 학생들은 1921년 목포만세사건을 일으켰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과정에서도 수피아, 기전, 정명의 여학생들은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적극적으로 시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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