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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민규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304號
발행연도
2019.12
수록면
107 - 13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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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昌尉 吳泰周(1668~1716)는 明安公主(1667~1687)와 결혼해 儀賓(駙馬)이 되어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대신 文翰과 筆墨으로 自娛하며 살았던 인물이다. 그의 부친 吳斗寅(1624~1689)이 수십년간 선대 묘비를 건립하지 못하고 서거하자 그 遺志를 이어받아 先代 묘비 건립을 所業으로 삼았으며, 1690년부터 그가 죽는 1716년까지 27년 동안 친가 묘소에 11기, 외가에 2기의 묘비를 건립했다.
오태주는 비문이 과장되거나 부실하지 않을까 여러 번 상의하는 著述觀을 가지고 있었으며, 스스로 가문의 대부분 비석 書寫를 담당해 松雪體의 대가로서 모습도 보였다. 오태주는 명필이었지만 ‘기세가 웅장하고 강건’한 특징이 있는 石峯 韓濩(1543~1605)의 〈大字千字文〉을 集字해 비석의 前面字로 사용하기도 했다. 1710년대에 건립된 한호 집자비는 대부분 오태주의 친인척을 중심 건립되기도 했다.
오태주가 건립한 龍鈕形蓋石 3기와 盤龍形蓋石 1기 및 목조건축을 번안한 十字閣形蓋石은 수량이나 조형성 등에서 다른 사대부 가문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독창적이고 우수하며, 왕실 비석의 수준도 능가 하고 있다. 이것은 오태주가 선대 묘비 건립을 평생의 所業으로 여기고, 著述과 書寫 뿐만 아니라 匠人과 造形 등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사회적 지위와 재력 등이 뒷받침된 결과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오태주의 家系와 생애
Ⅲ. 능묘 석물에 대한 당대의 관심과 오태주의 인식
Ⅳ. 오태주가 건립한 묘비의 특징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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