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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선영 (문화재청)
저널정보
한국민화학회 한국민화 한국민화 제11호
발행연도
2019.10
수록면
34 - 57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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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의 시각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금기시되었기 때문에 자주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드물게 제작되었던 형벌 그림의 목적이나 기능은 미술의 보편적인 기능인 감상이나 자기감정의 표현 등을 위해 제작되지 않았다. 형벌의 입안과 집행은 국가의 독점권한이었고 백성을 통제하려는 정치권력의 통치수단이었기 때문에 봉건시대 형벌 그림은 정치성을 띨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세종과 정조연간에 제작·반포되었던 〈고신도〉나 「형구지도(刑具之圖)」·「곤제지도(棍制之圖)」 등은 형정 책임자인 관리들을 교육하기 위한 지침서로 제작되었다. 국가권한인 형벌 집행이 조선시대 전시기에 종종 사적으로 남용되었던 사례들 때문에 통치자인 왕으로서는 백성들을 통제하는 권한이 중간 책임자인 관리나 신분적인 지배층인 양반이 아니라 국가라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천도하는 불교의식에 사용되었던 독특한 구성의 불화인 감로탱화에도 형벌 그림이 묘사되어 있다. 조선시대 오형(五刑) 중 태·장형, 참형과 고문형인 신장이 주로 표현되어 있다. 인간 과오의 업보로서 형벌이 표현되었고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신자들을 독려하는 감로탱화에서도 정치적 성격의 일면을 볼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 말 이후 제작되었던 김준근의 형벌 그림과 김윤보의 ≪형정도첩(刑政圖帖)≫은 정치권력이나 종교권력에 의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 일반 화가들이 제작한 것이었고 그 수요자는 국내인이 아니라 외국인들이었다. 김준근의 풍속화는 조선의 풍속과 생활에 흥미를 가진 서양인들에게 시각화된 민족지(民族誌)로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김윤보 ≪형정도첩≫은 그 일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의 형무관이었던 나카하시가 저술한 『조선시대의 형정(朝鮮舊時の刑政)』 이라는 연구서에 실려 조선시대 형정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조선을 방문했던 서양인들이나 우리나라를 침탈한 일본인들은 고문과 같은 전근대적 형벌 풍속을 가진 조선의 풍속에 대해 우월감을 가졌고 더욱이 일제의 침략의 정당성을 지지하기 위한 문화적 우위를 드러내고 있어 이들의 형벌 그림 역시 정치적 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조선 전반기 형벌 그림의 제작 배경과 목적
Ⅲ. 19세기 말 이후 형벌 그림의 제작 배경과 목적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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