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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연식 (동국대)
저널정보
국립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도서문화 도서문화 제53집
발행연도
2019.6
수록면
7 - 31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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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진도 용장성에서 발견된 명문와 12점과 청동합 2점의 명문 내용을 검토한 후 그 내용을 토대로 용장성 안에 있던 고려시대 사찰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았다. 명문와 [01]에는 太平 10년(1030)경에 건립된 金沙寺가 보이는데, 이 사찰은 용장산성 지역에 존재했던 최초의 사찰로 생각된다. 명문와 [02]와 [03]에는 진도 바깥의 해남과 구례 지역에 있던 別珍莊과 沙等山村 지역에서 제작한 기와가 공급되었음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들은 13세기 전반기에 무인집정자 崔瑀(崔怡)의 아들 萬全이 이곳에 사찰을 새로 건립할 때에 활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願堂主’라는 내용이 보이는 [04]도 이때의 사찰 건립과 관계된 것으로 보인다. 명문와 [09]의 내용으로 볼 때 1243년경에 이 지역에 산성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로부터 멀지 않은 시기에 만전이 월출산 남쪽에 새로 月南寺를 창건한 것으로 볼 때 만전은 자신이 근거지를 진도에서 월출산 지역으로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나머지 명문와들은 단편적 내용이어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청동합 명문와 [13]에는 최우의 진양부에서 月南社에 이 청동합을 만들어준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月南社는 만전이 건립한 용장성의 사찰을 근거지로 한 신앙결사의 이름으로 생각된다. 만전이 월출산에 새로 지은 사찰의 이름인 月南寺는 이 진도의 月南社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청동합에는 ‘卅四’라는 숫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진양부에서 만들어준 청동합의 숫자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과 같은 명문와와 청동합의 명문으로 볼 때 11세기 초에 진도 용장성에 출현하였던 金沙寺는 12세기 중엽 萬全이 축조한 새로운 사찰로 계승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용장성의 축조로 그 흐름이 단절된 것으로 보인다. 만전이 건립한 사찰은 월출산 남쪽으로 옮겨져 月南寺라는 이름으로 조선후기까지 그 맥이 계승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출토 명문와 및 청동합 명문의 판독과 내용 분석
Ⅲ. 명문와 및 청동합 명문의 내용으로 본 용장성내 사찰의 성립과 변천
Ⅳ.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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