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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영신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인문사회과학회 현상과인식 현상과인식 2020 여름호 제44권 2호(통권 제143호)
발행연도
2020.6
수록면
19 - 50 (36page)
DOI
10.46349/kjhss.2020.06.4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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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언제 어떻게 첫걸음을 내디디었는지에 대한 논의를 찾기 어려운 마당에, 이 글은 민주주의의 역사를 논의코자 한다. 민주주의는 말글의 힘을 받아 널리 퍼져 우리나라에 왔다.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을 다짐하고 이를 널리 펼쳤으나, 그 원칙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말의 힘을 넘어서서 글의 힘에 실려 오늘날 온 세계 구석구석으로 널리 번지었다. 글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힘은 종교개혁의 도움을 받았다. 일반 인민 모두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소통 수단에 힘입어 이 뜻이 널리 퍼졌다. 신조에 따라 모두가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가르쳤기에 교중은 모두 글을 읽을 수 있어야 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기독교가 들어올 때 성경이 국문으로 옮겨지기 시작하여 일반 인민에게 널리 읽혔다. 다른 말로, 국문 해독력을 갖춘 사회층이 성장하였다. 이러한 때에 서 재필의 〈독립신문〉이 창간되었다. 이 신문은 지배 계급의 문자 대신에 인민 모두가 쉽게 읽을 수 있게 국문을 소통의 수단으로 삼아 국문으로 박아내었다. 그 자체가 급진성이었다. 한문을 소통 수단으로 정하여 이를 독점해온 지배 계급에 대한 도전이었다. 민주주의의 첫걸음은 국문을 소통 수단으로 삼으면서 시작되었다. 일제 강탈기에 나온 우리 신문을 비롯하여 지식 계급은 〈독립신문〉의 급진성에서 뒷걸음질 하여 국한문을 주장해왔다. 소통 수단의 일반화를 위하여 일한 ‘한글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밑거름이었다. 이 글은 반백년 전에 세상을 떠난 한글 사람 최 현배를 기리며 쓴 것이다.

목차

1. 생각 마당
2. 말글 힘
3. 글자와 변혁
4. 글자와 민주주의
5. 그때와 이제
6. 끝에
도움 받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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