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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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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역사 여성과역사 제32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93 - 22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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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신라에서 유일하게 있었던 진성왕의 양위 과정과 배경을 검토한 것이다. 진성왕의 양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주로 신라말 혼란기라는상황과 연관하여 부정적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양위는 왕위 계승의 한 방식으로, 양위의 정치적 성격은 후임왕의 왕위 계승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진성왕의 양위 역시 진성왕 자신이 아닌 후임왕인 효공왕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효공왕은 헌강왕의 서자로서 왕위 계승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므로 진성왕은 유교적 양위 형식을 통해 ‘서자’인 효공왕의왕위 계승을 정당화시키려 하였다. 진성왕은 양위 과정에서 국정 혼란과자신의 부덕을 내세웠는데, 그것은 양위의 명분으로 후임자인 ‘효공왕’이왕위를 물려받을 만한 현덕을 갖춘 적임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진성왕의 양위는 후임자 발탁과 국정 참여를 거쳐 왕위 계승이라고 하는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유교적 이상 군주인 요순(堯舜) 선양(禪讓) 고사의 영향을 보여준다. 진성왕의 양위에는 유교의 정치 이념이 드러난다는점에서 유학자의 영향이 보이는데, 진성왕대 시무10조를 바친 최치원을 주목하였다. 서자인 효공왕의 왕위 계승이 순조롭게 이루어졌으며, 효공왕 즉위 이후에도 반란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성왕의 양위는 의미가있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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