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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훈식 (울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76호
발행연도
2020.8
수록면
57 - 88 (32page)
DOI
10.15299/jk.2020.08.7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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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주안점은 조선후기 통신사의 예물수증 양상을 통시적으로 살펴보는 데 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일본은 통신사 왕래를 통해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다방면에서 활발한 교류를 하며 우호관계를 지속했지만 명암은 상존했다. 그간의 연구에서는 주로 외교, 문화교류의 성과를 중심으로 통신사를 조망하였다면 갈등이 드러난 사안도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통신사를 심층적이고 총체적으로 고찰하기 위해서는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통신사 왕래기간 예물수증을 두고 보면 전반적으로 상호 호혜적 태도로 선물을 주고받았지만 갈등이 표면화된 사례도 많았다. 17세기에는 특히 예물수증을 두고 일어난 갈등이 고조되었는데, 주로 私禮單을 둘러싸고 소동이 많았다. 일본이 금은화를 비롯하여 막대한 예물을 조선의 삼사신 이하 사행에게 주거나, 사행이 쓰고 남은 찬물 등을 금으로 바꿔 돌아가는 길에 주면 사행은 이를 거절하는 일이 빈번하였으며, 심지어는 그 예물을 바다나 강에 던져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는 교린관계 이면에 깔린 매우 갈등의 요소가 표면화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예물수증을 두고 일어나는 갈등이 17세기에 오간 통신사행에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18세기에 들어서면 비교적 그러한 갈등이 줄어들고 대신 적절한 예물교환의 형식이 규례화 되었다. 이를테면 사행이 받은 예물은 일부는 사행의 수행원들에게 분급되거나 대마도와 무역하면서 지급해야할 대금으로 충당하는 방향으로 규례화 되었는데, 그로 인해 삼사신을 중심으로 한 예물수증 갈등은 현저히 감소했다. 그러나 일부 개별 수행원에게서 예물수증 갈등이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1719년 통신사의 제술관 신유한이 대표적이다.
조선후기 통신사의 예물수증 갈등의 시대적 추이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은 통신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바탕을 둔 의례개혁론이 대두되는 현상이 이 현상과 절묘하게 대칭곡선을 그린다는 점이다. 즉 예물수증 갈등이 현저히 감소되는 흐름과 대비적으로 통신사행에 대한 부정적 인식 증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살피는 일은 추후 과제다.

목차

국문초록
1. 들머리
2. 17세기 통신사행
3. 18세기 통신사행
4. 마무리-예물수증 갈등의 요인 진단을 겸하여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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