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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창석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99호
발행연도
2020.9
수록면
275 - 305 (31page)
DOI
10.37331/JKAH.2020.09.99.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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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番 주민은 위씨조선에게 복속될 무렵 지금의 황해도와 경기 북부지역에 분포했고, ‘진번군의 설치와 폐지 - 낙랑군 이관 - 남부도위의 설치와 폐지 – 대방군의 지배’라는 수차례의 영속관계 변동을 겪었다. BC 75년 낙랑군 남부도위가 설치될 때 진번군의 영역 중 남부에 해당하는 예성강~임진강~한강 하류역이 방기되었다. 경기 북부 지역은 중국 군현, 마한, 영서예의 틈에 낀 정치적 공백지대이자 완충지대였지만 한편으로 舊진번 주민의 정치체가 형성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고 보인다. AD 30년의 남부도위 폐지와 2세기 후반 낙랑군의 지배체제 동요가 이에 일조했다.
3세기 초 帶方郡이 설치되기까지 이어진 영속관계의 변동과 혼란 속에서 구진번 주민가운데 유력한 집단이 파상적으로 남하하여 伯濟國으로 유입되었다고 생각된다. 2세기 후반~3세기 초가 백제 건국집단이 이주해 온 시기로서 가장 유력하다. 이들은 BC 4세기경 성립된 眞番이라는 정치체의 후예이지만 BC 108년에 진번군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이래로 漢문화, 그중에서도 樂浪郡 문화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획득한 製鐵, 建築, 製陶 기술은 물론 사회적 기술(Social Technology)을 활용하여 伯濟國의 선주민을 포섭해갔고 백제국을 마한의 맹주로 성장시켰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眞番의 형성과 위치
III. 眞番郡의 변천과 주변 정치체
IV. 원삼국시기 예성강~한강 유역의 정세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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