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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역사학연구소 역사연구 역사연구 제40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257 - 293 (37page)
DOI
10.31552/jh.2021.01.4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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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시아 냉전사의 맥락과 관점에서 1949년 태평양동맹 구상을 독해한다. 태평양동맹을 다룬 기존의 연구들은 태평양동맹 구상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이승만 정권의 의도를 분석하거나,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와 비교하여 태평양동맹이 왜 실패했는지를 따지면서 미국의 무관심한 대 아시아 정책을 지적했다. 이 둘은 각각 태평양동맹의 원인과 결과를 따진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모두 한국과 미국이라는 일국적인 시야에서 태평양동맹 구상을 분석하고 있다는 약점을 공유한다.
이 글은 태평양동맹 구상을 아시아 냉전의 맥락을 반영한 전략 구상의 관점에서 포착하고자 한다. 각국의 태평양동맹 구상은 각국이 생각하는 ‘냉전’에 대한 인식의 반영이다. 1949년의 시점의 냉전 아시아에서는 크게 세 가지 흐름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먼저 1947년 독립 이후부터 냉전 질서를 비판하고 아시아의 탈식민 국가를 결속하는 ‘비동맹’ 노선을 추구한 인도가 있었다. 다른 한편 국공내전을 겪고 있던 국민당 정권과 남북이 분단된 한국의 이승만 정권은 ‘동맹’ 노선을 주창했다. 그리고 ‘비동맹’ 인도와 ‘동맹’의 대만, 한국 사이에서 ‘연맹’ 노선을 고심하던 필리핀도 존재했다. 이 세 국가의 각축과 경쟁은 아시아 냉전의 복합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냉전 구도가 공고해지는 한국전쟁 이후의 상황에도 다시금 반복된다는 점에서 1949년의 태평양동맹 구상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일은 의의를 지닌다.

목차

국문초록
머리말
Ⅰ. “파도치는 태평양”과 1947년 아시아 관계회의
Ⅱ. 비동맹의 기원: 1949년 뉴델리 회의
Ⅲ. 연맹과 동맹 사이의 ‘태맹(太盟)’
맺음말: ‘태평양’의 유산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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