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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유미 (상명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속학회 한국민속학 韓國民俗學 第73輯
발행연도
2021.5
수록면
157 - 192 (36page)
DOI
10.21318/TKF.2021.5.7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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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두부의 도입과 발전의 역사적 추이를 알아보는 글로서 동아시아적 음식이라 여겨지는 두부가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우리나라에 도입되었고 일상에서 보편화되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기록에 따르면, 두부는 고려 후기에 전해졌으며, 조선시대에는 ‘두포’라는 이름으로도 불려졌다. 이때의 두포라는 명칭은 두부가 조선시대 음식생활에 빠르게 적용되었음을 의미하며, 사회적으로도 중요하게 여겨졌음을 나타낸다. 즉, 고려시대에 중국식 명칭인 두부를 그대로 사용한 것에 비해 조선시대에는 건국 초기부터 ‘두포’라는 우리식으로 개념화한 명칭을 만들어 사용하였고, 이는 당시 사람들이 두부를 단순히 외래에서 도입된 음식으로만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사회 및 민생 등에 필요한 음식으로 간주하여 재빨리 받아들이려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선 전기부터 널리 만들어지고 쓰였던 두부의 제작과 활용은 크게 공무적 기능을 하는 두부와 일상생활에서 활용되는 두부로 나눠볼 수 있는데, 공무적 성격을 갖는 두부는 두부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인 泡匠 외에도 국가차원에서 지정되고 관리되는 사찰인 造泡寺 승려들이 담당하여 만들었다. 造泡寺는 供上될 두부 제작을 맡은 사찰로서 조포사에서 만든 두부는 왕실 제례 및 각종 국가적 업무에서 활용되었다. 일상생활에서의 두부는 특정한 인력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대부들을 비롯하여 찬녀, 노복 등의 음식을 담당하는 인력 및 각 가정 구성원 등의 각계각층 사람들이 만들었다. 이들은 각자의 용도에 따라 두부를 생산하고 음식으로 활용하였으며 ‘軟泡會’와 같은 특정 계층의 모임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조선시대 두부는 다채로운 사회상과 관련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불교계와 연관된 전래, 공무적 기능 수행 및 두부제작에서의 성별 제한, 노인 봉양 및 효행의 실천이라는 목적, 의식동원적 면모, 화폐경제에 활용되는 물품, 개인적 수용 양상 등을 두부에 연관된 사회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상은 두부가 조선시대 사람들의 민습과 삶에 깊이 관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여는 글
Ⅱ. 한중일 삼국의 두부 연원 논의 및 전래 시기
Ⅲ. 조선시대 두부의 실제와 이용
Ⅳ. 닫는 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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