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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판수 (한림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아연구 아세아연구 제64권 제2호(통권 제184호)
발행연도
2021.6
수록면
9 - 40 (32page)
DOI
10.31930/JAS.2021.06.6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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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당치 100년을 돌아볼 때 당권만 장악한 지도자는 실상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당치 또한 매우 불안정했다. 반면 1930년대-1940년대에 걸친 마오쩌둥의 군권·당권 장악 과정에서 ‘당-군관계’ 및 ‘당-대중관계’가 확립되었고, 비로소 당치의 안정과 확장이 성취되었다.
이 논문은 1940년대 들어 왜 마오쩌둥이 당-대중관계를 도입했고, 또 왜 그 기점을 ‘중국식 당치의 시작’이자 ‘마오쩌둥 시대의 시작’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분석한다.
중국식 당치는 중일전쟁에서 국공내전까지, 즉 외세와의 치열한 전쟁과 국민당과의 잔혹한 내전을 치르는 가운데 도입·발전되었다. 이는 코민테른의 지부로서 ‘철의 기율’ 일변도의 당치를 쇄신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대중동원이 일상화된 시기’ 마오쩌둥의 물리적 권력에 더하여 ‘사회적 권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즉 마오쩌둥은 파벌과 분점하는 군권의 한계를 인지한 후, 개인이 독점하려는 대중정치를 당권에 접목시켰고, 전쟁·내전 시기 지속적 실험을 통해 ‘대중정치 관리역량’을 제고했다. ‘당-대중관계’에 기반하여 마오쩌둥은 단순히 물리적·정치적 힘을 장악하고 활용한 지도자가 아닌, “중국인민의 영수(领袖)”로서 중공 당치 100년을 대표하는 유일무이한 권력자로 우상화될 수 있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마오쩌둥 ‘파벌’의 군권 강화와 당권의 불안정
Ⅲ. 옌안정풍과 중국식 당치 도입
Ⅳ. 국공내전 시기 대중정치의 급진화 실험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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