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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상기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충청문화연구 충청문화연구 제26집
발행연도
2021.8
수록면
29 - 54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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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지역의 독립운동은 한말에는 의병전쟁과 국채보상운동이 일제강점기에는 3.1 운동과 농민운동이 활발했던 특징이 있다. 당진에서의 독립운동은 항일 의병전쟁부터 시작되었다. 당진의병은 1906년부터 1910년까지 당진의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활동한 특징이 있다. 1906년 5월 홍주성전투에서 패한 차상길 의병, 1906년 4월 기지시에서 창의한 최구현 의병들이 소난지도로 들어왔으며, 이들이 소난지도에 주둔하고 있던 홍원식의병과 연합하여 당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희생이 있었다. 또한 당진의병은 水賊을 의병에 영입함으로써 의병의 전투력을 제고하였으며, 전기의병기 의병의 한계로 지목되던 신분간의 차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였음을 볼 수 있다.
당진지역에서의 애국계몽운동은 신교육운동과 계몽단체 활동, 그리고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중에서 국채보상운동은 인근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모금 액수나 참여 인원이 많았던 특징이 보인다.
당진지역 3.1운동은 면천보통학교 학생들이 3월 10일 전개한 시위운동부터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면천 시내에서 만세 운동을 벌였으며, 경찰대의 제지를 받고 해산되었다. 4월 4일에는 대호지면민들이 천의장터에서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시위는 대호지면장이 주도하였으며, 여기에 도호의숙의 훈장과 학생들, 그리고 천도교 계의 인사들까지 합류하고 면민들이 대거 참여한 점에서 지방 3.1운동의 최고 항쟁으로 특기할 만하다.
당진지역에서는 3.1운동 이후 각성한 청년들을 비롯하여 농민들의 항일투쟁이 전개되었다. 당진 지역 청년운동은 신평, 우강, 합덕 중심의 청년들로 구성된 신합청년회의 활동이 주목된다. 이들은 설립 직후 당시 확산되고 있던 사회주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 합덕과 우강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농민운동은 합덕과 신평의 농경지가 많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농민들은 당진소작조합을 조직하여 체계적으로 지주에 대항하였다. 이들의 소작쟁의투쟁은 식민지 지주제에 대항한 민족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당진지역 신간회 지회는 재만 동포 지원을 비롯하여 소비조합 창설과 조선인의 기본권 보장, 그리고 강제 이민 정책 반대 등을 요구하는 활동을 하였다.
당진출신 인사들은 1945년 광복을 쟁취할 때까지 해외로 망명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당진인으로 해외에 망명하여 활동한 이로는 남정, 이종혁, 유해준이 대표적이다. 남정은 만주로 망명하여 의성단을 조직하고 일본영사관을 습격하였으며, 정의부와 조선혁명군에서 활동하였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이종혁은 일본군을 탈출하여 만주로 망명 후 참의부 군사부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유해준은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로 활동하였다.

목차

한글요약문
1. 머리말
2. 한말 국권회복운동
3.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4. 당진인의 해외독립운동
5. 맺는말
참고 문헌
Abstr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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