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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서지민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불교미술사학회 불교미술사학 불교미술사학 제31권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37 - 80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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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불국사 금동아미타불상과 금동비로자나불상에 대한 다양한 학설 중에서 합의되지 않거나 적절하나 해명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불상의 제작시기, 手印을 반대로 결한 이유, 아미타불상 도상문제, 두 불상의 도상체계에 대한 화엄교의적 관점의 해석을 제시하였다. 불국사 금동아미타불상과 금동비로자나불상은 長身의 체구이다. 기존에는 이런 특징을 석굴암 본존불상의 양식계보의 연장선에 두면서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와 唐末五代 불상의 영향으로 이해하면서 9세기 후반에 제작되었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필자는 중국 天龍山石窟의 盛唐代 불상 중에도 불국사 금동아미타불상과 금동비로자나불상과 같은 장신형의 예가 있음을 지적하고 그런 양식의 성당대 불상 영향으로 8세기 후반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또 가장 양식적으로 흡사한 백률사 금동여래입상이 8세기 후반에 제작되었다고 추정되고 있는 점, 9세기 이후에는 국가시책에 따라 대형의 금동불상을 조성하기 어려웠다는 사실도 불상의 제작시기를 8세기 후반으로 설정하는 근거로 제시하였다. 이 불상들은 양손을 반대로 수인을 결하고 있는데, 이는 지의에 의해서 정립된 중국식 坐禪修行法에는 成佛하기 위해서 산란한 마음을 진정시켜서 禪定에 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精相인 왼쪽으로 動相인 오른쪽을 눌러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런 중국식 좌선수행법은 종파와 시대를 초월하여 주변국가까지 영향을 끼쳤고 불국사 금동아미타불상과 금동비로자나불상도 이런 논리에 따라 도상이 변용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보았다. 불국사 금동아미타불상은 아미타불의 수인인 中品下生印 내지는 說法印의 변형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수인의 도상 예인 일본 나라 東大寺의 ≪구사만다라≫나 ≪법화당근본만다라도≫의 주존 등을 볼 때 화엄의 노사나불 또는 석가모니불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하였다. 즉 불국사 금동아미타불상은 극락정토신앙에 따라 조성된 아미타불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석가모니불의 존격을 갖고 있는 화엄의 노사나불상 도상으로 파악된다. 그렇다면 ‘화엄종 사찰 불국사에서 함께 제작되어 특정한 신앙체계를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금동아미타불상과 금동비로자나불상이 구현하고자 한 바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통일신라시대 화엄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중국 화엄2대조인 지엄은 ?화엄경?의 經主이나 그 개념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十佛을 解境과 行境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二種十佛說을 제시하였다. 이 화엄불신론에 비추어보면 중생의 誓願에 응해서 나타난 부처인 해경십불은 금동아미타불상(석가모니불)으로, 석가모니의 근원적인 깨달음인 행경십불은 금동비로자나불상으로 구현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이 2구의 불상은 화엄경의 교의와 그를 구체화하는 지엄의 화엄불신론을 구현한 불상으로 講堂인 藏堂(현재 無說殿)에 봉안되어 교육적인 자료로 활용되지 않았을까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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