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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종건 (대구한의대학교)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30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55 - 204 (5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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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6월 11일부터 9월 21일까지 중국에서는 청일전쟁의 충격과 양무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근대화 개혁운동이 전개되었다. 광서제가 신진 인사인 강유위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서구식 근대화를 위한 제도 변혁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러나 100일 만에 보수파의 반격으로 개혁 인사들이 체포 축출되고 광서제의 정치 주도권도 박탈당하고 유폐되는 이른바 무술정변으로 개혁은 좌초되었다. 이러한 격변이 있었던 1898년 6월 이후 반 년 여에 대한 대한제국에서의 신문 기사를 분석해 본 결과 당시 우리나라에서의 언론은 인접 국가인 중국 청나라에 관한 기사가 적지 않았지만, 근대화 개혁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깊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당시 청나라의 정국에 대하여 언론이 다룬 기사들의 대부분은 청나라와 다른 나라와의 관계, 특히 청나라와 영국, 일본, 러시아, 프랑스, 미국 등과의 관계에 주목하였다. 그 밖에 청나라에서의 일어난 사건이나 대한제국 내외에서 발생한 청국인과 한국인 간의 관련 사건들에 대하여 자세히 다루고 있다. 당시 언론에서 청나라의 근대화 개혁에 대하여 다룬 기사들도 주로 신식 군대 확충, 군사 유학생 파견, 근대식 교육 기관 확대, 철도와 무역 등 근대 산업에 관련된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정치 제도 변혁을 비롯한 개혁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접근은 충실하다 할 수 없다. 19세기 말 대한제국 하에서 언론은 아직 초창기 단계여서 외신 보도가 정밀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고, 편집진에서 중국에서의 근대화 개혁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크지 못하였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당시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대외 진출 팽창이 본격화하고 격렬해지고 있는 상황과, 그러한 위기 국면에서 중국의 청조가 그나마 근대화 개혁을 통하여 자존을 모색하고 있었다는 정황에 대한 구체적 인식이 결여되었다는 당시 대한제국 시기 언론 역량 차원에서 한계가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위기와 개혁을 대한제국의 안위를 지키고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교훈적 소재로 접근하고 있다는 관점이 중시되고 있었다는 점은 상대적으로 돋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이 시기 언론이 대국민 계몽의 기능을 나름대로 잘 감당하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해 주는 면모이다. 당시 언론이 대외 정세에 대한 접근과 보도에 있어서 시의성과 사실성 면에서 어느 정도 한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으로서의 사회 계몽적 역량은 나름대로 감당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무술변법 시기 중국의 정황이 대한제국 시기 우리나라에 계몽적 영향력을 어느 정도 미칠 수 있었음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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