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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보영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100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5 - 55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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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마쓰오(加藤増雄)는 청일전쟁기 한국주재 영사로 첫발을 내딛은 이래 자국민 보호와 무역 증진 및 한국 내 일본세력을 부식했다. 이후 공사로서는 자국의 경제적․외교적 이해에 철저히 복무했다. 공사 퇴직 후에는 연설과 기고를 통해 일제에 의한 한국의 식민지화 과정에 물질적․정신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가토는 부산영사로 파견되기 전 해외의 외교공관에 근무한 사실이 있으며 한국에 파견되기 전 이미 『日韓交涉略史』를 간행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이해가 높은 인물이었다. 가토는 2년간 부산에 주재하면서 개항장 시행규칙을 제정해 시행하고 개항장 밖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던 일본인 관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그는 육군통신소 군인이나 부산항을 왕래하는 승선원 등으로부터 외부 정보를 입수하여 동학농민혁명군의 동태를 짐작하고 이들과 교전시 유리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공사로 재임할 때에는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수세에 몰린 일본 세력을 만회하기 위해 고종의 환어를 위한 공작을 시도하였다. 또 영사 재임기 목포 개항의 경제성과 관련한 의견을 제시하고 공사 재임기 목포 및 군산 등 개항장의 조계장정을 직접 체결하여 개항장 내 일본의 영향력을 확고히 하는데 역할을 일정한 하였다. 영사와 공사로 활동하면서 형성된 그의 한국인식은 자연스럽게 한국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로 옮겨갔다. 그는 한국인을 대체로 열등하면서도 의구심마저 큰 인종으로 폄하하였다. 따라서 제도개혁이나 교육에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한국을 원활하게 통치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을 일본인에게 동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통감부의 적절한 인재등용과 통치를 요구하였다. 이처럼 가토의 활동은 영사와 공사의 분업적이고 단절적인 업무 한계를 극복하고 목포개항과 같은 연속적인 사업을 이뤄냄으로써 한국에서 일본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아울러 한국민과 고종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한 말과 행동으로 고종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한국인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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