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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영애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미술사와 시각문화 미술사와 시각문화 제24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58 - 187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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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석굴암(石窟庵) 주실의 10구 승려상이 ‘십대제자(十大弟子)’가 맞는가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는 승려상의 수가 10구이니 큰 의심 없이 십대제자상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석가모니의 십대제자를 표현할 때는 예외 없이 가섭(迦葉)과 아난(阿難)을 부처 좌우에 두었는데, 왜 석굴암의 10구 승려상은 이를 따르지 않았는지, 가섭과 아난을 좌우에 배치하지 않아도 이들을 십대제자로 볼 수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필자는 석굴암 10구 승려상이 ‘십대제자상’이 아니라 불법(佛法)을 전하는‘행도승(行道僧)’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 해석은 석굴암과 같은 시기인 8세기 중국에는 ‘불법을 전하고 다니는 행도승’의 시각 전통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10구 승려상이 걸어가는 모습 및 입구 쪽 좌우의 나이 든 승려상이 손에 ‘전법(傳法)’을 상징하는 ‘손향로’를 들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동시에 ‘행도(行道)’가 요당(繞堂), 요불(繞佛)과 같은 의미로 부처를 예배, 공양하기 위해 부처의 주위를 우요(右繞)하는 행위를 포함한다는 점도 중요한 판단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8구 승려상 역시 우요하는 형상이며, 손에는 손향로를 들고 있어 이 역시 8세기 통일기 신라 행도승의 실체를 알려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석굴암 주실 주벽의 10구 승려상을 조각하면서, 석굴암 제작자가 의도한 것은 8세기 중국 유명 화가들이 선호하는 주제였던 ‘행도승’이었다고 추정된다. 그렇다면 왜 10구인가? 이에 관해서 필자는 의상(義相, 625-702)계 화엄(華嚴)이 주목했던 ‘十’에 주목했다. 화엄에서 숫자 ‘十’은 특별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화엄 신앙은 ‘십’이라는 원만수(圓滿數)를 기준으로 모든 교리를 체계화했다. 석굴암이 조영되던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대에 화엄사상(華嚴思想)은 신라 불교계의 중심에 있었다. 재상이었던 김대성(金大城)은 의상의 제자인 표훈(表訓, ?-?)에게서 의상계 화엄사상을 배웠으며, 의상계 화엄학파의 거점 사찰로서 불국사(佛國寺)와 석굴암을 창건하였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본존상 뒤에 배치된 10구의 승려상, 그 위의 10개의 감실(龕室) 역시 『화엄경(華嚴經)』에서 완전한 수로 여기는 ‘십’을 의도한 것이라고 봤다. 10구의 승려상은 불법을 세상에 전하는 ‘행도승’을 화엄의 완전한 수인 ‘10’에 맞춰 조성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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