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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채광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저널정보
한국서원학회 한국서원학보 한국서원학보 제8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91 - 127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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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노론은 크게 전통적인 노론 사족 가문과 노론을 표방하며 등장한 신향층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전자의 대략적인 지표를 제시해 주는 것은 1738년(영조 14) 정언 이수해가 안동 김상헌 서원 재 건립을 요청한 상소에서 영남 내 대표적인 서인 명문가들을 언급한 내용을 통해 일단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영남 최고의 노론 명문인 덕수이문 일원으로 열거한 대개의 가문들과 긴밀한 혼반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 가문의 통혼권 특징을 요약하면, 17세기에는 기호지역 서인 가문들과 주로 혼인하면서도 영남지역 사족가문과도 혼인을 매개로 노론 확산에 큰 역할을 하였다. 18세기에도 앞 시기와 유사한 흐름 속에서 상대적으로 통혼권이 더 확대되어 영남지역 내 가문들과의 혼인 비중이 높아졌다. 즉 영남 내 同色이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검토할 영남 노론계 서원 건립 흐름도 바로 이와 같은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여기에는 18세기 영남 사회의 변화 속에 관권의 비호를 받은 신향 세력의 부상도 큰 몫을 차지했다. 조선후기 영남 서인계 원사는 노론계 60개소[당파, 문중], 소론계 2개소, 노・소론계 공존 1개소로 총 63개소이다. 이들 가운데 중간에 승원한 곳이 대다수였으며, 지역별로는 38개 군현에 분포했고, 좌도가 우도에 비교해 앞서 있었다. 건립 시기는 18세기의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대구부・상주목・경주부・성주목 대읍에 그 숫자가 높게 나왔다. 이중 사액 원사는 6개소이고, 대원군 원사 훼철 당시에는 2개만이 존치되었다. 영남 노론계 원사 제향인의 성격은 ①당파 ②문중 인물 ③충절인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중 ①이 핵심이다. 당파 관련 인물은 노・소론 분당 이전 서인계 인물 6명, 노론계 29명, 소론계 5명, 기타 1명 순이었다. 이들의 제향 배경을 점검한 결과 지방관 15개소, 유배 관련 14개소, 장루지지(杖屢之地) 5개소, 은거 2개소, 문인・입향조・지명・처향 각 1개소, 미상 5개소로 확인이 되었다. 합천 출신 윤봉구 문인 최남두를 제외하면 영남인은 전무했다. 제향인은 송시열 제향 원사가 14개소로 가장 많았고, 이이와 주자 ⇨ 김상헌・김창집・윤봉구 등의 순으로 파악되었다. 문중관련 인물을 제향 한 노론계 서원은 14개 가문에서 16개소가 건립되었으며, 충절인을 제향 한 원사는 5개소가 건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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