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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위주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68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7 - 51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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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세기 후반 세계사적 격동기에 조선에서 이른바 지식인이라고 할 인물이 어떤 사람이 있었는지, 그들이 제각각 시국을 인식하고 대응한 자세는 어떠하였는지, 그리고 이런 와중에 생겨난 동학의 위상과 역할은 또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등에 대하여 검토해보고자 하였다. 19세기 조선이 당면한 화두는 2가지였다. 하나는 내정개혁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西學과 外勢에 대한 대응 문제였다. 이에 대한 지식인들의 대응 방식은 다양하였는데, 단순하게 정리하면 (1)척사위정 (2)위정개화 (3)개화변법 (4)척사변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1)척사위정계열 지식인은 전국에 광범위하게 포진한 儒林이 대표적이었다. 다른 하나는 흥선대원군과 그 측근 雲邊人이었는데, 운변인의 척사위정은 유림의 그것과 결이 다소 달랐다. (2)위정개화계열 지식인으로는 먼저 초기개화론자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조정에 영향력 있는 高官 자제를 교육함으로써 처음으로 개화의 중심세력을 형성하였다. 다음은 고종의 개국정책을 지원한 일부 중앙관료와 민비 척족인데, 이들은 東道西器論으로 고종의 개국정책을 옹호하였다.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각종 해외 사행에 참여한 인물도 이런 계열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개화변법 계열로 나아가기도 하였다. (3)개화변법계열 지식인은 갑신정변 주도자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 2~30대 젊은이였다는 공통성이 있다. 다른 하나는 갑오개혁을 주도한 인물인데, 갑신정변 직후 해외로 망명한 사람이 많았으며, 위정개화 계열 인물 가운데 동참한 이도 적지 않았다. 동학은 척사를 지향하면서도 유교적 가치에 근거한 위정은 거부하고, 변법을 지향하면서도 외세 의존적 개화를 거부한, (4)척사변법의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19세기 이래 당면한 내정개혁과 외세 문제를 가장 이상적으로 해결하고자 하였으며, 민중의 간절한 염원을 대변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최제우 당시 이미 수천 명의 교도가 생겨났고, 제2대 교주 최시형 당시에는 수만 명으로 확대되었으며, 마침내 전국에 걸친 갑오농민운동으로 구현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동학은 天道敎를 개창하고 개화변법 계열 지식인을 수용하여 문명개화 운동을 전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기미독립선언을 주도함으로써 역사에 가장 빛나는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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